[ 시(詩)가 있는 아침 ] - '문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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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고운기(1961~) '문명' 전문

귀족들 마차가 거리를 메우자
파리와 런던의 시가지를 온통 말똥이 점령했었다지
마차에서 쏟아지는 말똥이 공해가 되어
가솔린 쓰는 자동차를 만들었다지
말똥보다 가득하고
말똥보다 무서운
배기가스 매연이 나타날 줄 몰랐었겠지
그리운 말똥
먼 훗날에도 시인은 여전하겠지
그리운 매연
이라고 쓰겠지



옛 아시리아인들은 치통을 낫게 하기 위해 주문을 외웠다. 신에 의해 창조된 벌레가 파괴할 것으로 인간의 치아를 요구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주문을 외우는 대신 의사를 길러낼 학교를 세우고, 벌레를 퇴치할 병원을 지었다. 또한 약품과 물자를 실어 나를 자동차와 배.비행기가 발명됐다. 그리고 얼마 뒤에 대형 선박의 난파와 비행기의 참사가 발명됐다.

나희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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