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오래 못잊을 호도에서의 하룻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얼마 전 같은 과 보도사진부 동기.후배들과 함께 출발 당일부터 비가 쏟아져 내리는 가운데 촬영여행을 떠났다.

"학생들, 날짜 한번 기막히게 잡았네" 하는 행인들의 말에 기운이 빠졌지만 우리 일행은 빗속을 뚫고 그림같은 섬 '호도' 를 향해 떠났다.

기차를 타고 충남 대천역에 도착한 우리는 대천 해수욕장 근처에서 하루를 보냈다.

마침 그날은 일행 중 한 명이 생일을 맞아 자정에 해변에서 폭죽을 터뜨리고 쵸코파이로 탑을 쌓아 생일 케이크를 만드는 등 멋진 파티를 열었다.

다음날 늦잠을 잔 탓에 호도로 가는 배를 간신히 잡아탄 일행은 비구름이 채 걷히지 않은 어두운 잿빛 하늘과 무섭게 출렁이는 검은 바다를 가로질러 드디어 이름만큼 매력적인 작은 섬 호도에 도착했다.

어느덧 활짝 개인 푸른 하늘과 너무나 고와 발디디기조차 조심스러운 은빛모래, 밑바닥까지 들여다 보이는 바다.

우리들은 바다에서 물장난을 치고 모래성을 쌓으면서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그리고 밤에는 달무리지는 하늘과 물안개 속에 선명하게 흩어지는 야광색 파도를 보며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호도는 정말 아름다운 섬이었고 이곳을 찾아온 것은 참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게다가 우리는 그곳에서 인정미 넘치는 아저씨 두 분을 알게 됐고 그 분들의 배려로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섬사람 특유의 무뚝뚝함에서 배어나오는 수줍은 듯한 웃음이 너무 좋아 우리들은 두 아저씨와 함께 매운탕을 끓여 먹고 술잔을 건네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일행은 호도의 정취와 섬마을 사람들의 인심에 푹 빠져 촬영여행의 목적을 상실한 채 무겁게 들고 온 카메라 한번 제대로 잡아보지 못했지만 한 장의 흑백사진보다 더 또렷하고 오래도록 남아있을 추억을 가슴 속에 담아온 것 같아 무척 만족스럽다.

벌써부터 호도의 겨울바다가 보고 싶어진다.

이승은〈인천시남구학익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