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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잡·스리잡 뛰더라도 핸드볼 하고 싶은데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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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HC코로사의 안종민(中)이 슛을 던지고 있다. 코로사는 27-36으로 져 결승 진출이 좌절되면서 이 경기가 마지막 게임이 됐다.[성남=연합뉴스]

“차라리 지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막상 패하고 나니 자존심은 상하네요.”

27일 인천도시개발공사와의 2009 핸드볼큰잔치 남자부 플레이오프전을 치르기 위해 성남실내체육관에 들어선 경남 코로사 선수들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운동선수로서 당연히 이기고 싶었지만, 지고 싶기도 했다”고 실토했다. 이날 코로사 선수들은 인천도시개발공사에 27-33, 6점 차로 패해 결승 진출이 좌절됐다. 이걸로 모든 게 끝이었다. 팀이 이번 핸드볼큰잔치를 끝으로 해체하기로 했기 때문에 이 경기는 코로사 선수들에겐 고별전이 됐다. 경기 후 선수들은 “수고들 했다”며 서로 껴안았다.

코로사 정명헌 사장은 경기 후 “그동안 힘들게 팀을 이끌어 왔는데 재정적인 압박으로 더 이상 팀을 운영하기 어렵다”며 해체를 공식 선언했다. 그는 “팀 운영에 연 7억8000만~8억원가량이 든다. 경남체육회에서 한 해 3억8000만원가량 지원해 주지만 장미 육종 등으로 연매출 30억원을 올리는 작은 회사가 나머지 비용을 대는 건 무리다”고 설명했다. 남자 핸드볼은 코로사를 비롯해 두산·충남도청·인천도개공 등 4개 팀이 실업연맹에 가입해 대회에 참가해 왔으나 코로사가 해체되면서 큰 타격을 받게 됐다.

코로사 선수들은 지난해 말부터 이상한 분위기를 느꼈다. 구단이 선수들에게 ‘무급 휴가’를 주며 훈련을 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달 반 치 월급을 받지 못한 선수들은 전국체전이 끝난 11월과 12월 두 달 가까이 긴 휴가를 보냈다. 다른 팀들은 겨울시리즈인 2월 핸드볼큰잔치를 앞두고 훈련에 열을 올리는 시기였다.

구단과 선수들 간에 오해도 생겼다. 정 사장은 “1400여 개에 달하던 장미 재배 농가가 200여 개로 줄면서 회사 생존도 힘든 실정이다. 나도 어렵게 창단한 팀을 해체하는 게 가슴 아프다”고 했지만, 선수들은 “경남시체육회에서 많은 지원금이 나오는데 선수 월급조차 안 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항의했다. 이 와중에 박영대 감독이 물러났고, 지난 경기부터 이재서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아 팀을 플레이오프에 끌어올렸다.

경기 후 코로사 선수들이 허탈한 표정으로 코트에 앉아 있는 모습.[성남=연합뉴스]

핸드볼에는 2007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여자팀 효명건설이 모기업의 부도로 해체 위기를 맞았다. 그때 인천시와 벽산건설이 나서 선수단을 인수해 지금의 벽산건설 팀을 창단했다. 이는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모티프가 되면서 ‘한데볼’ 논란의 불을 지피기도 했다.

코로사 선수들은 “이대로 팀을 해체할 수는 없다”는 각오다. 레프트 백 소재현(29) 선수는 “이제 대회가 끝났고 선수들은 돌아가 경남체육회와 회생 방안을 찾아볼 예정이다”고 말했다. 적은 돈으로라도 팀을 꾸려보겠다는 얘기다. 선수들은 “당분간 월급을 받지 않고서라도 뛸 각오가 돼 있다. 코트에서 뛸 수만 있다면 예전처럼 투잡, 스리잡이라도 불사하겠다”고 했다. 한 선수는 “지금까지 어떻게 뛰어왔는데 이런 상황이 와서 속상하기만 하다”며 울먹였다.

온누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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