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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식탁] 여름 별식 냉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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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상에 가위라뇨…." 냉면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자르면 안된다며 박현수 선생은 가위를 물렸다. 최승식 기자<choissie@joongang.co.kr>

지난 4월 27일부터 6월 6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이채로운 전시회가 열렸다. '가까운 옛날-사진으로 기록한 민중 생활'전. 급속도로 진행된 도시화.산업화에 밀려 사라진 우리의 모습을 볼 기회였다. 뒷골목 풍경과 막 복개되는 청계천의 모습이 보는 이에게 낯섦과 동시에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전시회의 주역인 20세기 민중생활사연구단의 단장 영남대 박현수 선생을 대구의 평양음식점 대동강에서 만났다.

차림표에 적힌 '1965년 2월 개업'이라는 글자가 눈길을 끈다. 음식을 내고 계산대를 지키던 주인이 바뀌고 대물림을 한 젊은 주인마저 어느새 나이가 지긋해졌다. 올해로 선생의 대구살이는 25년째로 접어들었다. 서울 토박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비빔냉면은 여느 집이나 맛이 엇비슷하지만 물냉면은 천차만별이었다. 입에 맞는 냉면집을 찾아다니다 발견한 곳이 대동강인데 이곳을 드나든 지도 25년이 됐단다. 평안도 음식이 어느 때부터인가 경상도 사람들 입맛을 따라간다면서 선생이 웃는다.

우리의 대표적인 면식문화로 함경도의 '함흥비빔냉면'과 평안도의 '평양물냉면', 강원도의 '메밀막국수'를 꼽는다. 냉면과 막국수의 주원료인 메밀과 감자.고구마는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란다. 놋그릇에 평양냉면을 내오던 종업원이 가위를 들이밀자 "음식상에 가위가 올라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선생이 질색을 한다. 냉면을 맛있게 먹으려면 되도록 가위질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들은 듯하지만 고구마 전분으로 뽑아내 차지고 질긴 함흥냉면에 비해 메밀을 쓰는 평양냉면은 면이 굵고 거칠며 툭툭 끊겨 따로 가위질이 필요없다.

배부른 것과 맛있는 것이 분간되지 않는 미맹(味盲)들에게 냉면은 주 요리라기보다 고기를 먹고 난 뒤의 후식 이미지가 강하지만 미식가들이 꼽는 음식 중에 냉면은 빠지지 않는다. "냉면에는 단순한 끼니 이상의 취미가 반영돼 있는 거죠. 사람들은 보통, 취미만은 자신이 최고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거든요."

언제부터 냉면을 먹기 시작했을까. '동국세시기'에도 언급된 것을 보면 조선시대부터 냉면을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은 한여름 별식이 되었지만 냉면은 한겨울 살얼음이 동동 뜬 동치미 국물에 말아먹어야 맛이 난다. 날이 추워지면 내장은 뜨거워지는데 메밀의 찬 기운이 뜨거워진 내장의 기운을 다스릴 뿐만 아니라 메밀 특유의 독특한 제맛이 살아나는 때가 한겨울이다. 요즘 들어 한겨울에도 평양냉면을 내는 집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맛도 맛이지만 선생에게 냉면은 추억이다. 추억으로 냉면을 먹는다. 고등학교 시절, 다른 학생들이 빵집을 드나들 때 선생은 이북 출신인 친구를 따라 냉면집을 찾아다녔다. "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음식을 좋아하는 걸로 동질성을 느끼는 거죠. '우리는 하나다'라는." 지금은 사라졌지만 낙원동의 평양식당 냉면맛은 각별했다. 발로 밟아 틀에서 내린 냉면을 샅자리를 깐 마당에 앉아 먹었다. 단골인 친구 덕에 가끔 외상을 해도 좋았다. 냉면을 먹고 돌아올 때면 친구는 말했다. "냉면은 먹을 때보다 생각할 때가 더 좋아." 냉면을 먹을 때마다 낙원동 그 골목길이 고스란히 눈앞에 떠오른다. 그 친구와 다녔던 광화문의 '미진'도 기억에 남아 있다. 경기여고 여학생들이 득시글대던 곳이었다. 지금은 그 골목들 거개가 사라졌다. 간신히 사진과 추억 속에 남아 있다가 냉면을 먹을 때 살아나는 것이다.

선생의 이야기는 옛날 골목길 같다. 길을 잃었다 다시 길을 찾는다. "냉면 주소"로 시작해 "냉면값은 달아두소"로 끝나는 '냉면10소'라는 우스갯소리에 깔깔 웃다가 '냉면타령'에서는 고개가 갸웃해진다. 음식으로는 유일하게 냉면은 노래가 있다. "한 촌 사람 하루는 성내 와서…" 선생이 첫 소절을 부르고서야 노래가 떠오른다. 학창 시절 내가 누비던 골목들이 떠오른다. 선생과 냉면 한 그릇을 먹는 동안 면이 불었다, 초여름밤이 깊었다.

선생이 어릴 적 살던 집의 고목나무 자리에 파출소가 들어섰다. 안 가보는 것이 더 좋았겠다고 선생이 말한다. 내가 태어난 옛집은 그대로 남아 있을까. 깊은 밤 환하게 추억의 골목길들이 열린다. 냉면 국물이 담백하다.

하성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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