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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기행] 12.로마의 휴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사랑하는 사람은 단하루의 추억만으로도 평생을 감동속에 산다.

지체높은 공주와 평범한 신문기자의 '하루사랑' 을 그린 '로마의 휴일' (1953년, 윌리엄 와일러감독, 그레고리 펙.오드리 헵번 주연) . 흑백영상임에도 지금까지 어느 컬러필름보다 더 진한 이미지를 새겨주는 것은 알퐁스 도데의 '별' 같은 지순한 사랑을 그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배경이 로마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원의 도시 로마. 로마의 하루는 영원히 우리의 기억속에 남아 있다.

도시전체가 박물관이라 할 수 있는 로마. '로마의 휴일' 의 배경들도 대부분 모습만 조금 변했을 뿐 그대로 남아있어 당시의 이미지를 잔잔히 전해준다.

유럽순방에 나선 앤공주 (오드리 헵번 扮) .그녀가 묵었던 궁전은 실은 비토리오베네토거리에 있는 미국대사관저. 바로크양식의 이 건물은 영화속에서 겉모습만 보일 뿐 실제 내부는 스튜디오에서 촬영됐다.

신문기자 조 브래들리 (그레고리 펙扮)가 밤거리 (옛 황제들의 공회당터)에서 잠든 공주를 발견하고 하룻밤을 재워줬던 아파트는 문패만 바뀌었을 뿐 마르구타거리 51번지에 아직 그대로 있다.

이튿날 아파트를 나온 공주는 시장터에서 싸구려 샌들을 사신고 트레비분수 옆 미장원에서 머리를 자른다.

한때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숏 커트 헤어 스타일인 '헵번 스타일' 이 창조되는 순간. 그러나 아쉽게도 트레비분수 바로 오른쪽에 있는 이 미장원은 신발가게로 바뀌었다.

주인은 벌써 서너차례 바뀌었는지 영화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다.

관광객들은 트레비분수 앞에서 영화에서 처럼 동전을 던진다.

하지만 영화에선 사랑을 약속하며 동전을 던지는 장면은 없다.

공주가 아이스크림을 사먹던 스페인광장은 예나 지금이나 로마의 중심이며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붐비는 지역이다.

젤라티 (아이스크림) 장사도 여전하다.

"노천카페에서 식사하고 빗속을 걷고 싶다" 며 평민으로서의 하루를 간절히 바랐던 공주. 처음 담배를 피워 물었던 판테온 신전 옆의 카페는 선물가게로 바뀐지 이미 오래다.

오토바이를 타고 콜로세움 주변을 질주하다 경찰서에 끌려가고, 거짓말로 풀려나온 후 찾아갔던 '진실의 입' .코스메딘 산타마리아교회에 있는 괴물형상의 이 돌은 사실 그리스시대에는 맨홀뚜껑이었다.

'소망의 벽' 앞에서 "사랑을 하기에 하루는 너무 짧아요" 라며 아쉬워 하던 공주. 아깝게도 그 '소망의 벽' 은 없다.

다만 당시의 그 벽은 로마 구시가지를 둘렀던 아우렐리아 성벽 (19㎞) 의 일부일 것이라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

단 하루의 '로마휴일' 을 마치고 다시 공식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공주. "유럽순방중 어느 도시가 가장 인상적이었나요?" "로마입니다.

평생 로마를 기억할 겁니다. "

[로마 = 이순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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