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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평]'탭덕스' … 기발한 소재·양식 브로드웨이식 탈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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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45면

대단치 않게 여기던 이들의 눈부신 성공, 그 역전의 드라마를 보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더욱이 지금까지 변방에서 머물던 자들이 불문율처럼 여겨지던 경계를 뛰어넘어 중앙무대로 진출해 개가를 올렸을 때 그 시도는 기념비적이라고 할만하다.

지금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중인 '탭덕스' (30일까지) 는 브로드웨이식 뮤지컬의 문법에서 벗어난 소재와 양식, 그리고 소규모와 저예산으로 뮤지컬의 본고장을 기습해서 단숨에 고지를 점령한 복병과 같다.

'탭덕스' 는 6명의 남자들이 공연내내 벌이는 건각 (健脚) 의 축제, 소리와 몸이 어우러져 펼치는 강렬한 리듬과 비트의 향연이다.

공사장 인부들의 작업을 무대화하면서 눈앞에서 세우고 변형시키는 무대장치가 기발하고, 그 위에서 뛰고 구르고 두드리며 공사장의 일상을 예술적인 삽화들로 가꾸어내는 창조적인 장난기도 흥겹다.

다만 놀라운 에너지로 이끌어가는 퍼포먼스를 좀 더 인상깊게 간직하도록 전체의 흐름과 인물의 설정등에 연극성이 가미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흥미로운 것은, 호주 공업도시인 뉴캐슬시에서 출발한 젊은이들의 도발적인 창의력은 오히려 19세기 미국에서 발생한 탭댄스의 원형으로 돌아간데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표면은 산업사회의 도회적인 감각과 록음악으로 포장되었지만 그 이면은 아프리카의 전통춤, 아일랜드와 영국의 민속춤을 결합해서 1백여년전 노동자와 흑인들의 엔터테인먼트로 출발했던 탭댄스의 혼이 채우고 있다.

이 공연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안에 부속품처럼 끼어있던 탭댄스에게 본래의 신명을 되찾아주려는 이들의 비전과 노력의 결실이다.

이미 박제가 되어버린듯한 양식을 오늘날의 감각으로 되살리는 솜씨와 다른 나라 문화유산을 차용해서 자신의 자산으로 전환시킨 문화절충주의적 안목과 일상에서 예술성을 추출하는 민중적인 관점이 효율적으로 어우러진 작품이다.

게다가 대사없이 시종 이어지는 떠들썩한 몸짓은 문화장벽을 두발로 가볍게 뛰어넘어 지구촌시대의 보편적인 언어 구실을 한다.

전세계를 상대로 하는 히트상품으로 자리잡은 '탭덕스' 에는 전통적인 틀을 거부하고 소재와 양식에 대한 규범을 허물면서 주류에 충격을 가하는 전위예술의 정신이 흐르고 있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세계연극제' 에 앞서 찾은 '탭덕스' 를 통해 모두가 문화상호주의적인 안목을 넓히고 흥미있는 소재와 양식을 수집하면서 창의력의 경계를 확장하는 기회로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혜경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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