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자본확충 펀드 12조 내달 풀려 언제 어느 곳에 사용하느냐가 관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뉴스 분석 25일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이 발표한 은행자본확충펀드 운용 계획은 은행들엔 일종의 ‘강심제’ 처방이다. 경제에 혈액을 공급하는 은행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실물경제가 빠르게 괴사(壞死)한다. 이를 예방하고 은행이 계속 혈액(돈)을 펌프질(대출)하도록 하겠다는 게 자본확충펀드다.

그렇다고 당장 은행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 주사를 놓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혹시 필요해질 때를 대비한 처방이다.

펀드의 규모는 총 20조원인데, 12조원이 우선 다음달 초 풀린다. 은행별로는 3000억~2조원이 배정된다. 금융위 김광수 은행서비스국장은 “외국계와 국책은행을 제외한 전 은행(13개)이 지원을 신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은 후순위채권이나 우선주 등을 펀드에 넘기고, 그 한도 내에서 마이너스 통장처럼 필요할 때마다 돈을 찾아 쓸 수 있다. 지난 15일 진동수 위원장과 은행장들이 워크숍에서 합의한 대로다.

펀드는 은행의 채권을 시중가격보다 비싸게 사준다. 따라서 은행들은 이 돈을 아무 데나 쓸 수는 없다. 금융위는 ▶중소기업 신규 대출과 만기 연장 ▶보증기관 출연 ▶워크아웃(채권단 공동관리) 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 등에 지원 자금을 사용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은행들은 또 자금을 어디에, 얼마나 사용했는지를 매달 금융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문제는 은행들이 제때, 필요한 곳에 이 돈을 사용하느냐다. 한은이 돈을 넉넉히 풀고 있기 때문에 요즘 은행권에 돈이 모자란 상태는 아니다. 또 지난해 4분기 은행들은 채권 발행과 증자를 통해 15조1000억원을 마련했다. 덕분에 은행의 몸 상태가 어떤지를 나타내는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지난해 9월 10.86%에서 연말엔 12.19%로 높아졌다. 여윳돈을 한은의 채권(환매조건부채권)에 운용하는 은행들도 적잖다.

금융연구원 서병호 연구위원은 “은행이 대출에 소극적인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빌려준 돈을 떼일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라며 “기업 구조조정 작업도 본격화돼야만 자본 확충의 효과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행정지도에 따라 은행이 기업과 가계에 대한 대출을 늘린다 하더라도 경제 전반에 낀 안개가 가시지 않는 한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김준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