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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 가게 '한국탐험학교'서 땀흘리는 젊은이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어르신들이 하도 "젊어 고생은 사서 해야 한다" 고 강조를 했기 때문인지 정말로 고생을 파는 곳이 생겼다.

그랬더니 고생을 사겠다는 젊은이들이 줄을 이었다.

지난 5월 문을 연 '고생가게' 가 '한국탐험학교' (02 - 738 - 0997) 고 찾아온 손님은 10~30대 청년들이다.

이 집에서 파는 상품은 구색을 잘 갖췄다.

등산로가 아닌 길만 찾아다니는 트래킹부터 빛 한점 안들어오는 동굴탐험까지 힘들다 싶은 일들은 죄다 모았다.

물론 고난을 제공하는 업체들이 없었던 건 아니다.

기업.사회단체 같은 곳에선 으레 새로운 사람들을 뽑고 나면 '극기 훈련' 이라는 과정을 거쳐야만 참다운 동료가 될 수 있다며 이들을 산으로 강으로 내몰았다.

그러나 새로 생긴 가게를 찾은 고객들은 이렇게 등 떠밀려 온 게 아니다.

힘든 일좀 하게 해달라며 제발로 걸어왔다.

돈까지 들고서 말이다.

이곳이 자랑하는 비장의 무기가 '뗏목 탐험' 이다.

강원도 주문진 백사장에 통대나무를 갖다 놓고 시작하는 이 모험은 뗏목에 관한 모든 것을 체험하게 한다.

첫 과정은 배 만들기. 10명이 한조가 되어 직경 15㎝의 대나무를 튼튼한 나일론 끈과 로프등으로 꽁꽁 묶는다.

가로목을 대고 돛을 조립한 후 바다로 옮겨야 한다.

이들을 싣고 물에 뜨려면 뗏목의 길이가 10는 돼야 하기 때문에 여간 무거운 게 아니다.

그래서 백사장에 대나무를 철길처럼 만들어놓고 뗏목을 그 위로 미끌어뜨려 진수시킨다.

여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반나절. 바다에 들어가서도 고생은 계속된다.

돛을 세워 바람을 받으며 항해해야 하는데 처음 해보는 사람들이 제대로 할리 만무하다.

키를 잡는 것도 노를 젓는 일도 서툴기만 하다.

파도가 칠 때마다 뗏목 바닥은 흥건히 젓는다.

그래도 어렵사리 5백m 정도를 항해하고 나면 비로소 여유가 생긴다.

"직접 만든 걸 타고 바다로 나가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만드는 동안 내내 '과연 제대로 뜰까' 하는 걱정을 했는데 멋지게 항해에 성공하고 나니 성취감이 밀려들었어요. 뗏목 위에 있는 동안은 로빈슨 크루소 같은 소설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 원주 천사들의 집에서 일하고 있는 조혜정 (29.여) 씨는 체험소감을 이렇게 말한다.

뗏목은 파도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기 때문에 승선자들에겐 늘 바다로 떨어질 위험이 도사린다.

그래서 바다에 한번 빠져보는 일도 과정에 포함돼 있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참가자들은 이제 무인도에 표류해도 가만히 구조대만 기다리진 않겠다고 자신감을 내비치게 된다.

한층 원시인에 가까워졌다고 할까. 뗏목과 더불어 젊은이들이 혀를 내두르는 것은 산악자전거 (MTB) .자전거를 타본 사람이라면 포장이 잘된 도로라도 오르막길을 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안다.

하물며 돌이 울퉁불퉁 깔려있는 산길을 자전거로 오르내려야 하니 그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산악자전거를 타려면 평소에 사용하지 않던 삼두박근 등의 근육을 총동원해야 합니다.

건장한 사람이라도 2시간 정도면 기진맥진하게 되죠. 물론 참가자의 체력을 고려해 코스를 조정하긴 합니다. "

한국탐험학교 홍선표 (33) 과장은 젊은이들의 만족도는 고난의 정도와 비례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동굴탐험 역시 일상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별세계로 안내한다.

성류굴이나 만장굴 같은 유명한 동굴을 떠올리며 모험에 나선다면 다치기 십상이다.

이들이 들어가는 강원도 영월의 멱마굴은 입구가 좁아 10m정도를 기어야 하고 일단 안으로 가면 빛이 전혀 없다.

"랜턴을 끄고 나니 완벽한 암흑이었어요. 눈을 뜨나 감으나 아무런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죠. 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오감이 완전히 마비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한참 있으려니 감각과는 별개의 능력이 생겨나 주변 상황을 인지하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

홍익대시각디자인과 1년 서세정 (19) 양은 굴속에서 난생 처음 완전한 침묵과 어둠을 경험했다고 전한다.

4박5일간의 고생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들은 다들 "정작 힘든 건 비문명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들어낸 경쟁과 문명인 점을 깨달았다" 고 토로한다.

비록 어렵고 불편하더라도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 옛사람들이 살았던 방식을 체험하는 것이 숨막히게 돌아가는 사회생활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준다는 점에도 의견을 같이했다.

학교측은 벌써 겨울을 대비해 뗏목 대신 스키체험을 구상하고 있다.

여기서도 우아하게 리프트를 타고 올라갔다 슬로프로 미끌어져 내려오는 일은 없다.

스키장이 아닌 곳의 산길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생고생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고난이 깊을수록 쾌감이 크다? 그것은 만고의 진리일 터.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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