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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3차 6자회담 전망] 양보 없는 북·미…대타결 힘들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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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 사회=하영선 교수

오는 23~26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6자회담은 북핵 문제의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동아시아연구원(EAI) 외교안보센터는 본사.대한상공회의소.아시아재단 후원으로 최근 두 차례 토론회를 열고 6자회담과 북핵 정책에 관한 전망과 제언을 했다. 본지는 앞으로 12회에 걸쳐 EAI의 안보 관련 토론회 결과를 지상중계한다.

두 차례의 6자회담을 볼 때 3차 회담에서 대타결이 이뤄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근본적 변화없이 지속되고 있는 각 당사자들의 입장 대립 때문이다.

이번 회담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기본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미국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과 북한의 핵 억제력 강화의 악순환 위험은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이다. 따라서 미국과 북한이 6자회담 이외의 경로로 치달을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중장기적 안목에서 대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 지난 12일 서울클럽에서 토론을 하고 있는 동아시아연구원 소속 학자들. 왼쪽부터 김병국 고려대 교수, 김성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신성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박철희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한용섭 국방대 교수, 김태현 중앙대 교수, 전재성 서울대 교수, 이태환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사회는 하영선 서울대 교수가 맡았다. [박종근 기자]

장기적으로 한국은 민족적 국제공조라는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의 해결책을 고안해야 한다. 국제공조 없는 민족공조는 결과적으로 국제적 규제의 가능성을 높인다. 반면 민족공조 없는 국제공조는 민족의 자주권과 생존권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을 위험성이 있다. 중기적 관점에서 보면 북핵 문제 자체가 복합적인 만큼 관련 당사국들이 기본적 합의를 이루고 나면 회담의 틀을 보다 복합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양자와 다자를 결합해 사안에 따라 운용할 필요가 있다.

단기적으로 북한 지도부의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 북한 지도부는 생존권과 자주권을 핵무기가 아닌 '21세기적 방안'으로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재확인하고, 국제원자력기구의 핵 안정협정과 핵확산금지조약을 준수해야 한다. 동시에 최소한의 방어적 안보, 다자적 정치 안보,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 안보를 추진해야 한다.

미국 및 관련 당사국들은 북한에 군사.경제.정치적 담보를 제공할 것을 합의해야 한다. 북한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선 미국의 불가침 선언이나 조약과 같은 법적 담보만으로는 부족하다. 미국이 성실하게 법적 담보를 이행하도록 관련 당사국들의 다자 담보가 동시에 필요하다. 경제적 담보를 위해선 아시아판 마셜 플랜 수준의 다자지원을 모색해야 한다. 북한의 정치 주도세력에 대한 다자적 정치 담보도 필요하다.

한국 정부는 북.미 간의 전략적 변화를 정확히 파악해 현실적 대책을 세워나가야한다. 미국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CVID)의 용어에 신축적 입장을 보인다 해도 대량살상무기 확산과 북핵 문제 처리 원칙에 관한 미국의 입장이 바뀐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정리=오영환 기자<hwasan@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 [거리 못좁히는 '북핵' 입장] 한국

한국은 북핵 문제의 대화 해결 원칙을 명확히 하되, 대북 압력에 대해선 암시를 하는 이중접근 틀로 다루기를 희망한다. 반면 미국과 일본은 다자회담과 확산방지구상이라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대화와 압력의 이중접근 틀로 다루고 있다. 한.미.일 간에 미묘한 입장 차이가 있다는 얘기다. 더욱 심각한 것은 우리 정부의 기대처럼 일이 풀려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은 6자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 해법으로 관련국 간 3단계 상호 병행조치 및 대북 안전보장을 제안했다. 북한이 주장하는 '핵 동결과 보상'과 관련해선 모든 핵 활동의 단기간 동결, 검증, 대북 에너지 지원을 제의했다. 그러나 한국의 이러한 노력은 가시적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미국의 CVID 원칙과 북한의 동결 원칙은 타협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의 3단계 대북 안전보장안도 북한이 받아들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북한의 서면 불가침 담보는 단순히 법적 담보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정치적.군사적 담보를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대미 협상이 북한 정권과 체제의 생존이 걸려 있는 중대한 의제에 관한 것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경제적 대북 정책수단도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거리 못좁히는 '북핵' 입장] 미국

미국의 북핵 해결 방안도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미국은 1990년대에는 북핵 문제를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군사질서에 불안정을 가져다 주는 핵확산 문제로 다뤘다. 9.11테러 이후엔 반(反)대량살상무기 테러전의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북핵 문제를 PSI의 틀로 다룬다는 얘기다. 미국은 북한의 협상.억제라는 이중 핵정책에 대해 역시 6자회담과 PSI의 이중 대응을 하고 있다. 미국의 대북 핵외교 기본원칙은 CVID와 다자회담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협상과정에서 북한이 이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고 억제정책을 강화할 경우 미국은 경제제재 등의 조치를 추진하고, 효과가 없으면 북한 체제변환을 검토할 것이다.

미국의 대북협상 전략은 북.미관계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미국이 대테러전을 수행하면서 세계 전역에 걸친 여러 국면을 동시에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 전후처리 과정에 힘을 쏟는 미국이 대북 협상의 금지선을 설정하지 않은 것은 이와 맞물려 있다. 북핵의 평화적 해결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아 미국이 중국의 동의 또는 묵시적 동의를 얻어 체제변환과 군사 제재의 대안을 추진할 경우 북한의 핵 억제력 강화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군사적 불안정성을 급속히 심화시킬 것이다.

*** [거리 못좁히는 '북핵' 입장] 북한

북한은 북핵 문제의 해결책으로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 전환, 동시일괄 타결안을 제시했다. 두차례에 걸친 6자회담에서 드러난 북한의 해결방안은 기본적으로 1994년 제네바 기본 합의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2004년 베이징 합의'는 제네바 합의의 기본 유형을 반복하기는 어렵다. 우선 북한이 요구하는 핵 활동 동결과 미국이 요구하는 CVID 원칙은 쉽사리 좁히기 어려운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북한이 핵 동결의 대가로 요구하는 보상 문제도 난제다. 보상 내용 가운데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나 에너지 및 식량 지원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다자틀 내 서면 안전보장 방안'과 북한의 '서면 불가침 담보'의 차이다. 북한은 "미국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를 계속 완고하게 강요하는 조건에서 우리도 남조선 주둔 미군을 검증 가능하게 완전 철수하고 북.미 사이의 평화협정 체결과 관계 정상화로 담보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안전 담보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시간 끌기와 한.미 이간전술을 구사하면서 협상에 임하고 있으며, 6자회담에서 핵문제가 타결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핵 억제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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