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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진단과 해법 - 릴레이 인터뷰 ② 김주형 LG경제연구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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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만난 사람 = 박태욱 경제담당 대기자


민간 싱크탱크인 LG경제연구원의 김주형 원장은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한창 절정을 향하고 있으며 조만간 조정을 마치면 정상적인 상황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원장은 금융위기 뒤 신흥 시장(이머징 마켓)의 위상이 더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따라서 미국 등 선진국 시장에 편중됐던 국내 기업들의 수출전략도 수정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또 세계적 관심사로 떠오른 '그린 산업'을 잘 활용하면 한국이 선진국으로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 어제 미국의 다우지수가 급락했는데, 세계 금융위기는 현재 어느 정도 단계에 와 있는 걸까요.

“거의 위기의 절정에 이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 있으면 최악의 상황이 뭔지를 우리가 알게 될텐데, 그것을 벗어난 시기나 어떻게 해야 빨리 벗어날 수 있겠느냐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확실하기 얘기하기 어렵다는 게 오히려 더 문제입니다. 그동안 모르고 있거나 숨겨져 있던, 경제 시스템의 약점이나 비밀, 오류 등에 대해 조금 더 잘 알게되고 그것의 관계들을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겠지만. 이 때 그걸 해결하려면 과거의 대공황이나, 일본의 장기불황처럼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하며,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까지 각오해야 하는 것이라고 하는 의견이 있습니다. 반대로 많은 분들은 비록 길고 깊지만, 조정이 끝나면 정상적인 경제상황으로 돌아갈 것이므로 너무 비관적으로 볼 필요없다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이 부분에서 많은 지식인들의 의견이 갈리는 것 같습니다"

-김 원장께서는 어느 쪽이십니까.

"저는 후자입니다. 시장경제 체제는 오랜 발전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위기 때마다 보완해 왔습니다. 이번에도 시장의 허점을 고치고 나면 원래의 궤도로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 그런 안정이 저절로 될리는 없겠죠.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글로벌한 관점에서.

“당장 할 것은 금융 시스템의 보완이겠죠. 사실은 과거 대공황 이후 미국에서도 금융 시스템에 대한 새로운 규제들이 많이 도입됐는데, 그 규제들의 핵심은 금융기관이 하고 있는 통화창조 기능을 제약하는 것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금융업의 업종을 분리해서 , 민간에 의한 지나친 통화창조·신용창조·레버리지 효과를 억제해 금융 버블을 막자는 조치들이 많이 취해졌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경험한 것도 그동안 은행 시스템은 비교적 규제가 강했지만, 비은행권 IB들의 실질적인 화폐 통화창조에 대해서는 거의 규제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80년대 이후 진행돼 온 금융의 증권화가 가져온 유동성의 급증으로 인해서,지나치게 레버리지가 커진 것이죠. 투하자본 대비 30배 가까운 레버리지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규제받지 않는 금융기관에 의해 발생한 지나친 버블 아닌가 하는 얘기입니다. 그 버블이 경제 수축기와 겹쳐서 크게 문제가 됐으니까요.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회복하고,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규제가 생겨서 잘못되지 않도록 해주는 게 필요할 것입니다.

또 한가지가 최근의 세계 경제를 보면, 지금까지 시스템은 미국 소비자가 돈을 쓴다고 합시다. 그 돈의 원천이 달러를 찍어서 빚을 내서 소비를 하는 형국이었고, 그 제품을 공급하는 아시아권의 개도국들에서 대규모 흑자가 났습니다. 미국의 적자와 일부 국가의 대규모 흑자가 공존한 그런 현상이었죠. 이런 현상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지속될 수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이런 현상은 당분간은 몰라도 언젠가는 조정이 될 수 밖에 없을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그 과정에서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에 대한 도전이라던가. 기축 통화의 다양성의 모색 등이 있을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미국 실질적 소비 수요의 감소, 상대적으로 중국, 인도 등의 수요가 증대되면서 새롭게 세계 경제의 힘이 재편되는 과정이 생길 것으로 봅니다. 저는 이번 금융시스템의 문제가 그런 세계 경제의 힘의 재균형점 찾기(리밸런싱)이랄까,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를 정상화시키는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

- 그것이 기업, 또는 실물 부문에 대해서는 어떤 영향으로 나타날까요.
“수요 측면에서 많은 한국 기업들이 그동안 미국이나 유럽에 의존해 왔습니다 대부분의 새로운 제품, 부가가치 높은 것들이 모두 선진국에서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죠. 우리기업들이 선진국을 잘 알기도 했구요. 그런데 선진국 시장은 약화되고, 상대적으로 개도국이나 민족주의적인 경제운영이 가능한 그런 이머징 마켓에서의 셰어를 늘려야 하는 새로운 도전이 예상됩니다. 만약 세계 경제의 힘이, 수요의 힘이 개도국으로 옮길 경우 오히려 제조업이나 기존 산업의 힘이 상당기간 강화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개도국의 생활 수준을 글로벌 수준까지 향상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인프라와 제조업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자원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합니다. 자원이나 에너지, 물 등의 수요가 굉장히 빨리 늘 것이다. 세계 경제가 다시 성장하더라도 이머징 시장의 성장이 두드러진다면,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자원의 중요성이 커질 겁니다."

- 우리 기업들이 신흥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요.

“향후 세계 경제의 성장을 제조업이나 인프라 건설 쪽에서 이끈다면 우리에게 강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때마침 중국은 대대적인 인프라 투자에 나서고 있습니다만, 그런 나라들은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해 기회가 적지 않을까요.

“그래서 창의성이 필요합니다. 과거 우리가 성공했던 시장은 주로 미국 성향의 시장이었습니다. 공정하고 개방적이어서 그 나라의 토착기업이 특별히 우대를 받지 못하는 나라들이죠. 반면 일본이나 중국 등 특유의 사회적 분위기가 있는 곳에서는 기대에 못 미쳤죠. 그러므로 과거 미국 등에서 써먹었던 방식을 신흥 시장에서 하려면 안되죠. 우리 나름대로 그 나라들과 도움을 주고 받으며 이익을 낼 수 있는 창의적 발상이 필요할 겁니다."

- 도움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의 개발경험 같은 것을 말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개발경험은 그 나라의 관리들에게는 도움이 되겠지만, 그 나라 경제나 그 나라 소비자 입장에서 도움이 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일본은 한국 시장에서 제대로 힘을 못 쓰는 것 같이 보입니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과 산업적으로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해서 성장의 열매를 상당히 많이 가져갔습니다. 일본의 부품·소재 산업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같이 우리도 신흥시장의 기업·소비자와 협력 관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 최근 경제위기 관련해서 한·중·일 3국 간 통화스왑 확대 등 협력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저는 굉장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외환보유고만 해도 한 번 보세요. 옛날에는 적정 외환보유고가 단기채무(1년 내 갚아야 할 채무)의 크기나 무역규모 등 계산해서 적정 외환보유고 산정했습니다. 지금 경제 규모 등을 볼 때 계산마다 다르지만, 한국의 경우 800억~900억 달러면 비교적 적정한 외환보유고라고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2000억불이라는 과도한 외환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 시장에서 늘 불안하지 않습니까. 옛날에는 장기라고 봤던 자산들도 자신들이 급하면 언제든지 팔고 나갈 수 있는 상황이고 실제로 그렇게 이뤄지고 있죠.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빠져나간 돈이 우리나라 GDP의 10%나 됩니다. 그런 큰 돈이 단기적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죠. 그럼 얼마나 있어야 안정이 가능할까요. 어떤 사람은 4000억 달러라고도 얘기합니다. 그런데 그런 큰 돈을 현금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게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요. 4000억 달러나 되는 현금을 주머니에 가지고 있어야만 나라가 안심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조금 이상한 얘기죠. 결국 이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의 통화의 불안정성, 포트폴리오 투자자들의 패닉을 반영한 것인데, 여기 대처하려면 무역규모가 큰 나라끼리 서로의 통화에 대한 의존성을 높이는 게 하나의 대비책이 됩니다. 서로가 현금을 지나치게 많이 가져서 생기는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엔고로 고생하는 일본을 봅시다. 일본 엔화를 한국이 단기적으로 쓸 수 있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엔고 압력도 완화시키고 우리도 자금을 쓰는 등 서로 이익입니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이 각기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3국이 아시아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볼 때, 서로의 통화 스왑을 확대하고 나름대로 글로벌 금융 불안에 공동 대처하면 세계경제에도 상당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지금까지 아시아의 협력노력 등에 대해 미국이나 IMF가 많이 견제해 왔는데.

“달러가 기축통화성을 잃는 것은 그리 간단치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앞으로도 상당기간 그런 역할 해야 하고 IMF도 나름대로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한중일 통화 스왑같은 것은 기존 미국 중심의 시스템을 보완하는 것이지 대체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시아 통화기금을 만드는 것도 IMF와 잘 조율된 상태에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AMF가 IMF를 대체할 것으로 보지 않으며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 오히려 더 큰 혼란과 타격이 우려됩니다"

- 금융위기로 수요가 크게 줄어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어떻게 풀어야 하나요.

“불황 대비책은 수없이 많습니다. 정답이 따로 없죠. 다만 오래 살아남는 장수 우량기업의 조건이 4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환경 변화를 재빨리 읽어야 합니다.둘째는 위기에 대처하는 조직의 일체감이 있어야 하며, 세째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재무적으로 건전해야 합니다. 이것은 기업 뿐 아니라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 그런 면에서 우리 국가가 취하고 있는 방법은 제대로 가고 있는 건가요.

“보기에 따라 다르겠죠. 컵에 물이 반이 찼느냐, 반이 비었느냐 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이번의 위기를 우리가 잘못해서 생긴 게 아니잖습니까. 본질적으로 미국 등 금융시스템의 글로벌 위기에서 비롯된 거죠. 지난 5년간 글로벌 과잉 유동성에 따른 폐해를 조정하는 성격이 큽니다. 그 조정 과정에서 금융시스템에서 변두리 국가인 한국 경제가 지나치게 많이 개방돼서 집중적인 타격을 받는 상황입니다. 우리 금융시스템이 위기 전에 그렇게 부실했던 것은 아닙니다. 은행들의 BIS 비율도 높았고, 자산으로서 기업 대출도 건전했고, 한국 기업도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건전했죠. 위에 말한 네가지 조건 중 마지막 재무건전성은 문제 없다는 얘기입니다. 결국 포용력이 문제인데, 어제 노사민정 합의를 한 것을 보면, 우리 사회가 과거와 달리 우리 사회가 새로운 변화에 적응 가능하다는 징표라고 봅니다. 기업이나 시민단체, 정부 등이 새로운 변화를 수용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상당히 중요한 변화죠. 모든 경제 주체가 다 책임이 있고, 이를 공유해야 하는 겁니다."

- 노사민정 중 사측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책임은 무얼까요.

“일자리를 가능한 유지하고 늘리겠다는 게 핵심이겠죠. 기업이 어려우면 서구의 경우 구조조정부터 하죠. 당장 일이 줄면 노동력 수요가 줄어드는 데 이걸 직접 반영해서 사람을 줄이면 기업이 당장은 좋아져도 가치는 떨어집니다. 물론 당장 위기 속에서 기업이 그렇게 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비판은 못하지만, 가능한 자제하고 좋은 일자리 마련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 예컨대 정치권에서 현금 100조 풀어라, 시민단체에서도 그런 요구가 있었는데요.

“옳다, 그르다의 문제는 아니고, 기업들이 그렇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본다.”

- 그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인가요?

“ 개별 기업마다 다르죠. 각 기업 상황에 따라 그렇게 할 수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습니다. 다만 기업들은 많은 사람들이 이를 기대하고 있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을지, 할지 말지는 기업들에게 맡겨야지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 기업 입장에서 위기 극복에 대한 정부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금융시스템 안정이 최우선입니다. 그 다음은 경기 부양인데, 수출이 안되는 상황이므로 재정 정책을 통해 경기를 부양해야죠. 외환은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하지 않으면서 적절하게 조정만 하면 된다고 보는데 잘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어떤 부분을 잘 하고 있다고 보는 건가요.

“환율에 대한 인위적인 개입은 없어야 한다는 측면입니다. 시장에 순응하는 조정, 스무딩(smoothing)의 역할을 해야 하는거죠”

- 스무딩이란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 겁니까.

“예를 들어 시장에서 착란 현상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시장의 힘과 상관없이 일시적인 문제가 발생한 경우죠, 그럴 때는 개입하면 시장은 제 자리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고 시장의 힘을 거스르는 개입은 엄청난 대가를 치를 수 밖에 없습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한국 통화는 주변통화이므로 국제 금융시장에서 많은 영향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들의 현금 상황이 어려우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언제라도 팔고 싶어하는 게 원화입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근본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얼까요. 통화스왑 등 안전장치를 마련해서 한국 통화로 표시된 자산은 언제나 안심하고 쓸 수 있다는 시장의 신뢰를 심어주는 것이 외자 유출에 대한 대응책이 될 것입니다.

또 한국이 G20 의장국에 선임된 내막을 봐야 합니다. G20에서 영국, 브라질, 한국이 의장국입니다. 영국은 G7의 대표격으로 시스템을 보완하는 역할입니다. 브라질은 브릭스의 대표로서 그 입장을 대변하는데, 브릭스 국가 중 미국등과 상대적으로 소통이 잘 되니까 된 겁니다. 한국은 뭘까요. 한국이 들어간 것은 선진국도 아니고, 거대 개도국도 아니면서 ‘작고 개방된 국가(small open countries)’들이 해야 할 역할을 대변하라는 겁니다. 최근의 변화 속에서 작고 개방된 경제들이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룰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그 룰을 만들 때 한국이 꼭 기여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최근에는 아이슬란드가 국가 부도가 났지만, 국가부도가 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나라들을 한 번 살펴보세요. 모두 지난 10여년간 자기 경제들을 개방하고 외자를 받아들여 성장해온 스몰 오픈 컨트리들입니다. 이런 나라들이 개방에서 생기는 피해를 다 보고 있죠. 이런 피해를 사전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장치, 예를 들어 외자에 대한 일정정도의 규제가 가능하도록 하는 등의 장치를 만드는 데 한국이 기여해야 합니다. 이건 또 우리나라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현금(다량의 외환보유고)만 가지고 살아갈 수도 없는 것이고, 외국 자본이 한국에 갖는 부정적인 역할을 어느 정도 줄여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통화 스왑 확대 등 새로운 시스템 만들고, 이것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거죠.

아까 말했지만, 이런 경제 위기가 그렇게 오래 갈 것으로 생각 안합니다. 우리 경제로 봐서 잃어버린 10년 같은 게 올 것으로 보지 않아요. 새롭게 경제가 성장해 나가야 합니다. 그 때 우리가 무엇을 새로운 화두로 가지고 가야 할까요. 우리 기업들이 무엇으로 미래 사업을 구축해야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고 보는데,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게 상당히 괜찮을 것으로 봅니다. 지금 자원가격이 상당히 싼데, 경제 좋아지면 반드시 다시 값이 오릅니다. 따라서 새로운 에너지원 발굴하고 절약하고 자원을 아껴쓰는 부문에서 상당히 부가가치가 나올텐데, 여기서 한국이 뒤쳐지면 안됩니다.

- 녹색 성장 중에서 자원 효율화는 우리도 할 수 있지만, 대체에너지 분야는 우리 기업들이 거의 전방위적으로 뛰어들고 있는데, 우리 경제규모나 잠재력, 기술로 볼 때 다할 수 있나요? 어딘가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를 선택했다가 만약 그게 실패하면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죠. 결국 기업이건 정부건 리스크 테이킹의 본질이 이것 아니겠습니까. 과거 한국은 산업화 과정에서 항상 뛰어난 모델 국가나 기업이 있었고, 우리가 따라가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게 조금 다릅니다. 한 번 산업이 만들어지면 진입 장벽이 생기는데, 산업이 만들어질 때는 장벽이 낮은데다 새로운 표준을 만들기 위해 경쟁자들이 서로 공생합니다. 우리나라 녹색기술은 세계 톱수준보다 낮지만 그렇게 큰 차이가 없고, 많은 선진국들이 동참을 요청하는 상황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입장벽이 낮은 거죠.

만약에 우리가 리더그룹으로 성장하면 후발국에 비해 상당한 선점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하다 보면 확실한 분야나 방향이 보이지 않을까 싶은데, 이게 확정되기 전에는 어느 한 가지에 올인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다른 얘기지만 우리의 기술수준은 충분히 세계 수준을 따라갈수 있고, 일부는 앞서갈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이 선진국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난 50년 역사에서, 과연 언제 세계 최고 수준의 혁신에 동참하고 세계를 이끈 적이 있었습니까. 지금은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 우리가 세상의 선두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실제로 지금까지 우리 산업은 선진국을 따라잡는데 집중해 왔는데, 그런 혁신 능력이 우리에게 있을까요.

“남을 따라갈 때는 쉬웠죠. 목표가 명백하니까. 그런데 그런 모델이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현재의 주입식 교육으로는 그런 모델을 스스로 만들지 못합니다. 그걸 하려면 창의성, 융합, 감성 등이 필요합니다. 현재 한국 기업들의 상당수가 이런 상황입니다. 자기 스스로 어떤 모델을 창조하지 않으면 앞으로 갈 수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 사회도 그런 면에서 좀더 자율화되고, 개개인의 창의적인 생각이나 집단의 창의를 키워주는 방향으로 문화나 분위기가 빠르게 변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동의하지만 그게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일본이 그런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죠.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일본 사회에서는 태어나기 어려운 것 아닌가요. 개인적으로는 최근 우리 젊은이들은 그런 면에서 가능성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남과 다른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아주 긍정적인 모습인 것 같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항상 기회를 줍니다. 그걸 캐치할 수 있는 지 없는지가 문제입니다. 많은 기업이나 국가가 기회가 없어서 성공 못한게 아니라, 이걸 잡지 못했던 것이라고 봅니다"

- 핵심 포인트는 뭘까요. 기회를 잡으려면.

“결국은 일체감인 것 같습니다. 국가건 기업이건, 일체감이라는 게 완벽한 통일을 말하는 게 아니라 공동으로 추구하려는 방향성에 대한 합의를 말하는 겁니다.

-80년대의 ‘할 수 있다' 정신 같은 것을 말하는건가요.
.
“그렇죠. 그리고 변화에 대한 포용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기존의 생각이나 익숙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 실패에서 배우고 더 나은 성공을 위해서 부딪치는 용기.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같은 것이죠. 이런 게 강화되야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일본보다는 더 나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LG 등 한국의 글로벌 전자기업들은 원화 가치 하락으로 호기를 맞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 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환율이 주는 착시효과는 경계해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세상이 바뀌어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어야지, 환율 덕에 일시적으로 이익이 나고 말고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정리=이승녕 기자
박태욱 경제담당 대기자

[경제위기 진단과 해법-릴레이 인터뷰] ① 현정택 KDI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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