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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포럼

盧정부의 권력운용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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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노무현 정권의 권력관리는 대결 방식이다. 권위에 대드는 듯하면 승부근성을 가차없이 발동한다. 포용과 화합은 정권의 성정(性情)과 맞지 않는 것일까. 송광수 검찰총장 발언 파문은 그런 사례다. 검찰총장은 국가기강의 상징이다. 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총장의 기강문란을 정면으로 문제삼았다. 특정인에 대한 대통령의 질책 장면이 TV에 나오는 일은 과거 정권에선 거의 없었다.

김영삼(YS) 정권 시절인 1994년 4월 우루과이 라운드 문제로 김양배 농림부 장관이 전격 사퇴했다. YS가 국무회의에서 꾸짖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정권은 YS의 국무회의 발언을 자세히 알리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소개하면 권력의 영(令)을 세울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이 황당해하고, 공직사회가 흔들릴까 걱정해 대외비에 부쳤다. 내부 조율로 사표를 받았다. 지금 정권은 다르다. 대통령의 분노가 TV에 거침없이 표출된다. 그래야 직성이 풀리는 것일까.

노 정권은 무엇을 노렸을까. 검찰총장과 싸우는 듯한 모습은 손해볼 일인데 왜 그랬을까. 계산법이 다른 탓이다. 손해가 있으면 그에 못지않은 이익이 있다는 점을 주목한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과 송 총장은 오랫동안 마찰을 빚었다. 대검 중수부 폐지를 둘러싼 논쟁에서 노 대통령은 강 장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대치 상황 속에서 이런 식의 신임 표시는 강렬함을 더한다. 청와대의 영향력 밖이라는 검찰을 조일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도 소득일 것이다.

노 정권은 적과 동지를 나누는 데 익숙하다. 그런 행태가 통합의 정치를 해친다는 게 다수 국민의 비판이다. 그러나 권력운용에선 뚜렷한 이윤이 있다. 편이 갈리면 내 편에게 긴장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 같은 편의 소속감은 결집력을 높인다. 정치적 전선이 거칠수록 지지세력은 억척스러워진다.

노 대통령은 권력의 원리를 터득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을 보니 이런저런 이유로 목숨을 걸었다. 나는 그런 일이 없었지만 제일 화끈하게 투자했다"(연세대 강연, 성공비결)라고 말했다. 권력쟁취의 본질에 대한 명쾌한 설명이다.

한국 대통령들은 나름의 비장한 정치 드라마를 갖고 있다. 이승만의 독립투쟁과 건국, 박정희의 5.16과 산업화 투쟁, 전두환의 12.12 변란, 노태우의 6.29, YS의 민주화 투쟁과 3당 합당, 김대중(DJ)의 보수와 연합(DJP)이 그것이다. 노 대통령은 후보 단일화까지 끊임없는 승부수로 극적인 면모를 가다듬었다. 이회창씨의 패배는 그런 드라마를 만들지 못해서다.

소용돌이 정치 속에서 살아온 다수 한국인은 지도자의 요건으로 극적인 정치역정을 꼽는다. 시대의 감수성까지 갖추면 리더십의 경쟁력은 탁월해진다. 차기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김근태 의원은 "계급장을 떼고 치열하게 논쟁하자"고 말했다. 대통령에게 도전하는 듯한 발언이다. 노 대통령의 공개적인 반응은 없다. 송 총장 경우와 사뭇 다르다. 대통령의 격한 대응이 따르면 김 의원의 행동은 비장한 이미지를 가질 수 있다. 노 대통령은 그 점을 알고 침묵하는 것일까.

기존 권위의 과감한 해체는 노 정권의 정치 상품이다. 김 의원의 발언은 그에 대한 부메랑이다.

물 흐르는 듯한 권력관리를 하려면 말과 행동이 함께해야 한다. 지난주 노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일사불란은 싫다. 대한민국이 일사불란이 안 되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송 총장 파동으로 그 말은 빛을 잃었다. 말이 실천으로 이어지는 일관성만이 깔끔한 권력운용을 뒷받침한다. 계급장 발언 같은 부메랑도 막을 수 있다.

박보균 정치담당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