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꺼풀 벗겨진 '껍질의 신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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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생명체의 껍질은 진화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껍질이라는 '방패'가 있었기 때문에 생명체는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올 수 있었다. 약 5억3000만년 전 고생대 캄브리아기에 생명체는 껍질과 골격을 갖추면서 육상에서 본격적인 진화를 시작했다. 학자들은 이를 두고 '생명 폭발'이라고 부른다.

캄브리아기에 껍질을 갖게 된 '퍼즐'을 풀기 위해 과학자들은 여러 각도에서 해법을 찾았고, 해양생물체의 칼슘 농도가 갑작스럽게 높아졌다는 주장이 1970년대에 제기됐지만 명확한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지질화학자들이 당시 바다에 포함된 칼슘의 양이 갑자기 늘어나 껍질 형성으로 연결됐다는 중요한 증거를 찾아냈다.

미국 버지니아의 지질학조사협회 연구원인 숀 브레넌과 그의 동료들은 원생대 말기와 캄브리아기 초기 사이에 생성된 소금기 있는 암석을 통해 껍질의 비밀을 풀어냈다. 이들의 연구성과는 '지올로지(Geology)' 6월호에 실렸다.

이들은 5억4000만년 전 바닷속에서 생성된 24개의 암염(소금결정)과 5억1000만년 전 만들어진 14개의 암염을 대상으로 삼았다.

우선 암염을 잘게 부순 뒤 숨어 있는 작은 물방울의 성분을 조사했다. 당시 바닷물의 조성을 보자는 것이다. 그 결과 5억1000만년 전 생성된 물방울에서 5억4000만년 전에 비해 칼슘의 양이 월등히 많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적어도 세배 이상이었다.

이들은 초기 캄브리아기에 이뤄진 지질학적 변화가 갑작스러운 칼슘 증가의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브레넌은 "지질구조판이 빠르게 움직이면서 판 사이에 틈이 벌어졌고 화산 폭발 등으로 뜨거워진 바닷물이 이 틈으로 스며들어 지각 밑에 엄청나게 많은 칼슘을 바다로 녹여냈다는 것이다.

생명체가 껍질을 만든 것은 자신을 포식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칼슘의 양이 위험할 정도로 많아지면서 칼슘을 제거하려는 목적으로 껍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생명체는 환경에 저항할 수 있는 방패를 갖췄고 포식자들로부터 보호 받아 캄브리아기에 폭발적인 진화가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캔자스대 지구과학자 로버트 골드스타인 교수는 "바다의 칼슘이 생명체 진화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껍질과 진화의 인과관계를 더 명확히 밝혀야 한다"며 "다른 환경요인들이 더 중요하게 작용했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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