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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드라마'전원일기' 도중하차 응삼役 탤런트 박윤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농촌드라마 '전원일기' 의 양촌리 주민 17명이 최근 MBC로부터 느닷없이 '집단강제 이농 통지서' 를 받았다.

동네노인 4명, 귀동이등 젊은이 4명, 보배엄마.쌍봉댁등 동네아낙 7명, 동네아이 2명등. 모두가 정겨운 이름들이다.

조연급들이지만 농촌사랑만큼은 김회장 (최불암) 댁이나 일용이 (박은수) 네에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던 이들이 '전원일기' 전격 개편으로 날벼락같은 선별 물갈이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80년3월 첫방송때부터 17년간 '전원일기' 를 지킨 농촌노총각 응삼이 (박윤배) 도 부녀회장 종기엄마 (이수나) 와 함께 원치 않는 '이농대열' 에 끼었다.

유인촌.임채무.송경철등과 함께 MBC 6기 탤런트로 입사한 이래 연기생활 24년째인 박윤배. 매주 월요일 새벽6시. 17년간 연습이나 녹화를 위해 어김없이 침구를 정리하던 그였다.

습관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인가.

17년간 길들여진 그의 몸뚱아리는 18일 새벽에도 그의 연기혼을 오차없이 깨운 것이다.

"눈을 뜬 순간 며칠전 방송국으로부터 '이젠 그만 나와도 된다' 는 전화를 받은 사실이 떠오르더군요. 17년의 세월이 전화 한통화로 간단히 '정리해고' 될순 없잖아요. 하도 속이 상해 소주로 지샌 날이 많아요. " 언제나 그를 기꺼이 받아줄 것같은 양촌리마저 그를 버린 상실감이 컸던 탓이다.

떠나는 이와 남는 이들이 어색하게 만나 마지막 촬영을 한 MBC스튜디오는 착잡함과 서글픔이 넘쳐났다고 전한다.

김회장댁 (김혜자) 과 일용엄니 (김수미)가 "이럴수 있느냐" 며 방송국관계자에게 항의의 뜻을 전해 간신히 "필요하면 출연할 수도 있다" 는 지푸라기같은 답변을 받아냈다.

명예퇴직당한 가장처럼 고개만 숙이고 있을순 없잖아요. 엄마없는 애들 생각해서라도 전화위복으로 삼고 죽는 날까지 연기할 무대를 찾아야죠. " 극중 장가못간 노총각인 그는 실제 5년전에 이혼한뒤 아들.딸을 혼자 키우는 홀아비다.

시청률과 제작비 절감이라는 냉엄한 현실이 역귀농 (逆歸農) 풍조속에 때아닌 '이농 (離農)' 을 낳았지만 정겨운 얼굴이 하나씩 떠나는 사이 시나브로 전원이 황폐해질까 두렵기만 하다.

글 = 장세정.사진 = 장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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