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주영이 본 '폼페이 유물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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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이탈리아 지도가 여성들이 즐겨 신는 신발인 부츠처럼 생겼다면, 이탈리아의 고대도시 폼페이는 그 신발의 발목 앞부분에 위치했었다.

유명한 네로 황제의 폭정이 막을 내린지 11년후인 서기 79년 8월. 그러나 폼페이는 화산의 폭발로 화산재와 화산 분석 (噴石)에 묻혀 1천6백여년 동안이나 잊혀진 도시가 되어버렸다.

둘레가 3㎞에 이르렀고 여덟개의 성문을 가졌던 이 도시에는 극장과 검투사의 경기장.신전.공중목욕탕과 빵공장들이 들어차 있었다.

도시의 외곽에서 생산된 상품들로 시장은 항상 붐볐고, 항구는 지중해의 어느 곳이든 닿을 수 있는 출발점이기도 했다.

그래서 폼페이는 포도주와 기름과 빵을 주요 교역물로 하는 교역도시가 되었다.

화산이 폭발한 당시 도시에 뒤섞여 살았던 인구는 약 2만명. 그 폐허에서 약 2천구의 화석이 된 시신을 발굴하였다.

예술의 전당 미술관 1층 입구를 들어서면서 우리는 화산폭발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화산재에 묻혀버린 사람들의 형체를 만나게 된다.

특히 어린 자식을 온몸으로 껴안은 채 생을 마감한 젊은 어머니의 화석 앞에서는 좀처럼 발길을 떼어놓지 못할 충격을 받는다.

고고학자들은 굳은 화산재 속에서, 인체의 내부는 이미 사라지고 겉모양만 거푸집처럼 남은 화석을 발굴해냈다.

그들은 이 거푸집에 석고를 부어넣어 사망자들의 시신을 꼼꼼하고도 정확하게 복원해냈다.

복원된 시신들은 그들의 죽음 순간의 고통스런 얼굴 표정까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더욱 충격적이다.

이 전시회가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고대 로마인들 전체의 생활상뿐만 아니라 당시의 관습이나 사회상을 적나나하게 노출시킨 점이다.

그래서 이 전시회는 순수미술보다 폼페이 시민들의 생활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평가를 받고, 그러한 평가를 받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정성과 배려가 돋보인다.

네로 황제의 부인인 포파이아의 황금 뱀팔찌, 여인들의 황금장식, 검투사의 투구와 각대와 우승컵, 그리고 현대적 감각으로도 접근하기 손쉽지 않을 은제품들의 디자인과 그 실용적 가치, 그리고 지금의 보온밥솥의 원형인 음식보온기, 빵공장등은 실로 감탄을 아끼지 않게 만든다.

그리고 선술집이나 집안의 가장 은밀한 곳에 남녀가 나누는 사랑의 교태스런 장면들을 모자이크화로 장식해두고 사랑의 즐거움을 만끽한 그들의 생활에서 평화의 깊이 속에 스며든 삶의 허무와 불안을 읽게 된다.

그러나 미술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역시 그리스 양식을 모사한 조각과 색채의 보존과 회화성의 불가사의한 숙제를 가진 벽화, 그리고 그리스.로마신화의 내용과 에로틱한 모습이 담겨있는 다양한 프레스코화나 모자이크에 시선을 빼앗길 일이다 (9월3일까지 전시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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