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정부, 지지율보다 신뢰 회복이 더 급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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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부 신뢰’ 응답자 중 53% “위기 대응 잘 못 한다”

 이명박 정부가 성공하기 위해선 지지율에 집착하기보다 정치적 신뢰 회복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는 중앙일보와 동아시아연구원(EAI·원장 이숙종 성균관대 교수)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9~10일 전국의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통령 취임 1주년 특집 여론조사를 분석한 데 따른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32.2%, 정부 신뢰도는 29.4%다. 수치는 비슷했지만 의미는 크게 다르다. 우선 최근의 경제위기는 적어도 지지율 측면에선 위기인 동시에 기회 요인이 되고 있다. 외부 요인으로 초래된 위기 때 정부에 힘을 실어주는 결집효과(Rally-Round-the-Flag effect)가 지지율 하락을 어느 정도 막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정치적 신뢰는 정부정책 수행 평가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부를 신뢰한다는 응답자의 경우 경제위기 대응에 대해 ‘잘하고 있다’(47.4%)와 ‘잘못하고 있다’(52.6%)는 평가가 엇갈리게 나왔다. 하지만 정부를 불신하는 응답자의 90.6%는 ‘잘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최소한의 신뢰가 전제되지 않을 경우 정부정책이 곧 불신과 냉소 대상으로 전락한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취임 1주년 시점은 국정수행 지지율의 일시적 변동에 주목하기보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국민 요구를 지속적으로 수렴·반영함으로써 정치적 신뢰 회복에 주력해야 할 때다.

이번 조사는 한국리서치(대표 노익상)가 컴퓨터를 이용한 전화면접(CATI) 방식으로 진행했다. 표본은 성·연령·지역별 인구비례에 따른 할당추출법으로 선정했고 최대허용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응답률 18.6%).

◆정치적 신뢰=정부나 정치인이 추진하는 각종 정책이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고 있다는 심리적 믿음을 말한다. 정책 추진 과정(procedure)과 결과물(product)에 대한 장기적 평가로 형성되는데, 일단 형성되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정책 실패가 반복되고 국민의 개선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내용을 불문하고 무조건적 반대가 일상화될 수 있다.



경제  최우선 해결 과제 “양극화 해소와 경제 성장” 61%

 ‘경제 살리기’에 대한 국민의 바람과 기대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정부의 최우선 해결과제로 양극화 해소와 경제성장 등 경제 문제 해결을 꼽은 응답이 60.5%에 달했다. 실현 방안으로는 복지정책 강화(41.6%)보다 성장 우선 정책(57.7%)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성장과 분배의 이분법’ 대신 ‘성장을 통한 양극화 해소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국정 최우선 과제로 양극화 해소를 꼽은 응답자조차 복지정책(47.5%)보다 성장정책(51.9%)이 더 필요하다고 답했다. 전통적으로 복지가 우세했던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복지정책(45.1%)보다 성장정책(54.9%)을 우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높았다. 2007년 12월 EAI-한국리서치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층의 복지정책 대 성장정책 선호도는 51.9% 대 43.3%였다. 국민의 삶과 직결된 양극화 해소가 경제 살리기의 목표여야 하지만 이를 위해 성장정책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경제위기에서 시작된 국민의 불안감이 사회·정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취임 초와 비교해 양극화 해소(46.9→33.9%)와 경제성장(32.8→26.6%)이 중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줄어든 대신 국민통합(6.3→13.9%)과 정치개혁(3.6→7.4%)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 집권 1년 동안 쇠고기 파동과 대운하 논란 등을 거치면서 정치권과 국민 사이에 균열이 심해졌음을 의미한다. 또한 정치권이 경제위기에서 파생된 정치적 갈등을 적절히 조정하기보다 오히려 증폭시켰다는 비판의 메시지로 이해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1년을 체험한 국민이 주는 메시지는 명료하다. 경제 살리기에 집중하되 사회 통합과 정치를 정상화하라는 주문이다. 미흡할 경우 정치권 전반이 정치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안보  “한반도 정세 불안” 52% “북핵 인정될 듯” 37%

 현 정부 들어 계속되고 있는 북한의 대남 강경책과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한반도 정세는 국민 여론의 흐름과 인식도 바꿔 놓고 있다.

첫째, 안보 불안이 커지면서 한·미 동맹에 대한 지지가 높아졌다. 현재의 안보 상황에 대해 ‘불안하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는 51.9%에 달했다. 또 응답자의 38.4%는 북한이 전쟁이나 군사적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안보 상황에 불안을 느끼면서 한·미 동맹에 대한 지지는 높아졌다. 한·미 동맹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북핵 위기가 고조된 2006년 48.8%였으나 다음해 2차 남북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34.9%로 떨어졌다 이번에 다시 43.7%로 높아졌다.

둘째, 중국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있다. 중국을 긍정적으로 본다는 응답이 2005년 조사 때 48.6%였으나 이번엔 38.3%로 떨어졌다. 반면 미국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51.9%(2005년)에서 57.4%로 소폭 상승했다. 지난 정부에서 대두됐던 ‘중국 대안론’이 약화되는 모양새다. 이는 다자협력을 강조하는 오바마 정부의 등장과 관련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셋째, 북한에 대한 우호적 인식은 2006년 24.3%였으나 이번 조사에선 9.1%로 떨어졌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 미국의 군사적 수단 사용은 반대하는 대신 대북 경협에 대해선 일관된 지지 입장을 보였다. 협력과 지원을 통해 북한을 관리해야 한다는 전략적 사고가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넷째,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선에서 북핵 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전망이 높아졌다. 여전히 ‘장기적으로 북핵을 포기할 것’이란 응답(45%)이 가장 높았지만 핵 보유 여부가 불투명했던 2004년(54.9%)보다 10%포인트 줄었다. 반면 ‘핵 보유를 인정하는 선에서 타협할 것’이란 전망은 15.7%(2004년)에서 이번엔 36.6%로 조사됐다.



 ◆여론분석팀 ▶EAI=이내영(여론분석센터 소장·고려대)·이숙종(원장·성균관대)·전재성(아시아안보센터 소장·서울대) 교수, 정원칠·정한울(여론분석센터) 연구원 ▶중앙일보=신창운 여론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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