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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서 사라진 플라스틱 통이 방화 결정적 단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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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연쇄살인범 강호순(38·사진)이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장모 집에 불을 질러 네 번째 부인과 장모를 살해한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검찰은 강의 수원 농장에서 압수한 곡괭이에서 연쇄살인 피해자가 아닌 여성 2명의 유전자(DNA)가 검출됨에 따라 강이 이미 자백한 8건 외에 추가로 범행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계속하기로 했다.

수원지검 안산지청 박종기 차장검사는 22일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강을 구속기소했다. 7명의 부녀자를 유인해 살인하고, 장모 집에 불을 질러 부인과 장모를 숨지게 한 혐의 등이다. 정선군청 여직원 살해 사건은 추가 기소할 예정이다.

연쇄살인범 강호순 사건에 대한 수사 발표가 22일 오후 수원지검 안산지청에서 열렸다. 나기주 형사2부장(左)이 2005년 10월 30일 안산경찰서가 화재 당시 촬영한 사진(위)과 11월 2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촬영한 사진(아래)을 비교 설명하고 있다. 위 사진에는 플라스틱 통 잔해가 있었으나 아래에는 깨끗이 치워져 있다. [안산=표준 인턴기자]

◆“3.7도 날씨에 웬 모기향”=2005년 10월 30일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 강의 장모 집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안방에 있던 네 번째 부인(당시 28세)과 장모(당시 60세)가 숨지고 건넌방에 있던 강과 아들은 밖으로 탈출해 목숨을 건졌다.

경찰은 방화를 의심하고 강을 상대로 6개월간 내사했으나 단서를 찾지 못했다. 강은 화재 발생 1~2년 전과 1~2주 전 부인 명의로 보험 4건에 가입했고, 화재 5일 전 동거 3년 만에 뒤늦게 혼인신고를 해 보험금 4억8000만원을 받았다.

검찰은 이번에 화재 사건을 다시 수사하면서 ‘인화성 물질(유류)에 의한 방화’로 결론지었다. 화재 원인을 ‘모기향’으로 본 경찰의 수사 결과를 뒤엎은 것이다.

검찰은 방화의 근거로 거실 바닥 중앙에서 옆으로 액체가 퍼지면서 불에 탄 흔적이 있고 바닥에서 벽면까지 타지 않고 곧바로 천장으로 올라간 것을 제시했다. 유류와 같은 인화성 물질을 사용한 방화일 때 나타나는 모양새라는 것이다.

검찰은 화재 발생 직후 경찰이 촬영한 현장사진과 3일 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현장감식 사진을 대조한 결과 유류(시너 또는 휘발유)를 담은 플라스틱 용기가 없어진 것을 확인했다. 강은 검찰 조사에서 “화재 이후 (플라스틱 통을 가져오기 위해) 방범창을 통해 몰래 현장에 들어갔다”고 시인했다.

검찰은 화재 현장에 있던 모기향은 강이 실화로 위장하기 위해 갖다 놓은 ‘소품’으로 결론내렸다. 화재 발생 시기가 10월 말이고 3.7도의 날씨에 사람이 자지도 않는 거실에까지 모기향을 피울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강은 “화재현장에서 그을음을 들이마셔 5분 정도 기절했다가 일어나 탈출했다”고 주장했으나 법의학자들은 “그을음을 들이마시고 기절하면 다시 일어날 수 없다”고 반박한다.


◆강의 연극에 넘어간 경찰=화재 당시 탈출 상황에 대해 강은 “방범창을 발로 걷어차고 나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방범창이 6개의 나사로 고정돼 발로 차서는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안 뒤에는 “갖고 있던 공구로 나사를 풀고 나왔다”고 말을 바꿨다. 본인은 방 안에서 나사를 잘랐다고 주장하지만 화재 직후 유족이 찍은 사진에는 나사못이 온전하다. 검찰은 강이 나사를 미리 풀어놓고 불을 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경찰 조사나 국과수 감식에서 이 같은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것은 강이 최초 발화 지점으로 진술한 모기향과 방범창 등을 충분히 조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초동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안산=정영진 기자 , 사진=표준 인턴기자

연쇄살인범 강호순 사건 일지

▶ 2005년 10월 30일 : 안산시 장모 집서 화재로 전처와 장모 사망

▶ 2006년 9월 7일 : 강원도 정선군서 출근하던 군청 여직원 윤모(23)씨 납치·살해

▶ 2006년 12월 13일 : 군포시 노래방에서 배모(45)씨 납치·살해

▶ 2006년 12월 24일 : 수원시 노래방에서 박모(36)씨 납치·살해

▶ 2007년 1월 3일 : 화성시 버스 정류장서 박모(52)씨 납치·살해

▶ 2007년 1월 6일 : 안양시 노래방에서 김모(37)씨 유인·살해

▶ 2007년 1월 7일 : 수원시 버스 정류장서 연모(20)씨 납치·살해

▶ 2008년 11월 9일 : 수원시 버스 정류장서 김모(48)씨 납치·살해

▶ 2008년 12월 19일 : 군포시 버스 정류장서 안모(21)씨 납치·살해

▶ 2009년 1월 24일 : 경찰, CCTV 추적해 강호순 검거·강호순, 안씨 살해 자백

▶2009년 1월 30일 : 강호순, 부녀자 7명 살해 자백

▶ 2009년 2월 17일 : 강호순, 정선군청 여직원 살해 추가 자백

▶ 2009년 2월 22일 : ·검찰 수사 결과 강호순 곡괭이에서 2명의 다른 여성 유전자형 검출

· 검찰, 장모 집 화재에 대해 보험금 노린 강호순의 방화로 결론

·검찰, 최대 12명 살해 혐의 두고 추가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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