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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고 힘들수록 이룰 꿈은 커집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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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낮은 곳, 힘든 일에서부터 시작하면 이룰 수 있는 꿈도 그만큼 커집니다.”

24일 열리는 인하대 공학대학원 졸업식에서 환갑이 지난 나이에 석사(재료공학) 학위를 받는 백기용(62)씨. 초등학교 졸업장을 들고 제철소의 용광로 화부(火夫)에서 시작해 제철 명장(名匠), 기술사, 재료공학 석사 등 쇠를 다루는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다. ‘알루미나-hBN(하이 기가 붕소) 복합재료의 기계적 성질과 미세 조직’이라는 석사 논문은 40여 년 외길 장인 인생의 결정체로 평가받았다.

6남매의 맏이인 백씨는 경기도 안성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뒤 사회생활을 시작해 인천의 연탄공장 등에서 일했다. 군 복무 후 인천제철(현대제철 인천공장)에 입사한 것을 계기로 제철 현장의 외길을 걸었다. 시뻘건 용광로 불길 앞에서 8시간 내내 삽질을 하노라면 천형(天刑)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동료들이 하나 둘 떠나갔지만 그는 헌책방에서 중학교 교과서를 구해 와 Mn(망간)·Cu(구리) 등의 원소 기호를 익히며 제철 이론을 익혀 나갔다.

1979년 전기로 용해반장을 맡고서는 ‘신속 제강의 최고수’란 칭호도 얻었다. 쇳물을 빨리 끓여 내 원가 절감의 사내 기록을 세운 것이다. 일본의 앞선 제철 기술을 배우기 위해 일본어 독학에도 도전했다. 이때 배운 일본어로 84년 일본에 제철 연수를 다녀오고 2002년 한·일 월드컵 통역 봉사도 했다.

끊임없이 궁리하며 힘든 제철 현장을 지킨 보람으로 품질 분임조 대회 때마다 금·은상을 휩쓸었으며 89∼90년에는 2년 연속 현대그룹 제안왕을 차지했다. 92년에는 현장 사원 최고의 자리인 직장에 올랐고, 이듬해엔 기능공의 꽃으로 불리는 품질 명장에 선정돼 청와대도 방문했다.

부러워만 했던 명장이 되고 나자 공인 자격증에 눈이 갔다. 55세의 나이에 어린 동료들 틈에서 제강 기능사 시험에 도전했다. 회사에서 퇴근한 뒤 밤 12시까지 공부하고, 다시 오전 4시에 일어나는 강행군을 계속했다. 큰아들을 사고로 잃고는 한 달여를 술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몸과 마음을 추슬러 2000년 처음으로 국가 공인자격증을 손에 쥐었다.

자신감에 가속도가 더해졌다. 이듬해 제강 기능장을 딴 데 이어 2002년에는 대졸자도 쉽지 않다는 기술사(철 야금) 시험에 합격했다. 철강 제련에 관한 정규 교육이 전무한 가운데 57세의 나이에 기술사가 된 것이다.

한자 공부에도 도전해 2003년 한자 2급, 2004년 한자 1급, 2007년에는 한자 지도사 자격증까지 보탰다.

2004년 12월 인천제철을 정년퇴직한 그는 퇴직한 동료들이 관광길에 나설 때 대학 입학을 목표로 책을 잡았다. 하루도 쉬지 않고 공부에 매달려 4개월 뒤 중졸 검정고시를, 다시 4개월 뒤엔 고졸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수능 시험 준비 중에 학점은행제를 신청, 자격증만으로 84학점을 인정받아 1년6개월 만에 인천전문대를 졸업할 수 있었다. 인하대 대학원에서 논문을 지도한 조원승 교수는 “백씨는 학문에 있어서도 우선 쉬운 길보다 정도를 걸어 어린 학생들의 귀감이 됐다”고 말했다.

백씨는 “과거 어려웠던 시기를 헤쳐 나왔던 선배들처럼 젊은이들이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으면 경제위기도 곧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정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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