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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성희롱당’ 오명 잊었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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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오만함인가, 비뚤어진 동료의식의 발로인가.
최근 한나라당 의원들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는 주제는 ‘복당’이다. 복당 하면 으레 ‘친박계의 귀환’을 떠올리게 되고 실제로 지난주 부산 지역 친박계 300명의 일괄복당을 둘러싸고 친이-친박 간 해묵은 갈등이 불거졌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더 민감한 이슈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3년 전 ‘여기자 성희롱 사건’의 장본인으로 한나라당에서 사실상 ‘출당’됐던 최연희(65·무소속·강원 동해-삼척·사진) 의원 복당 건이다.

논의는 매우 조심스럽지만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군불 때기가 감지되고 있다. 당 차원에서도 공식 논의가 이뤄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7일 “1월 초 최고위원회의 비공개 회의 때 복당 문제가 나오자 박순자 최고위원이 ‘최연희 의원도 있지 않느냐’고 얘기를 꺼냈다”며 “이후 10여 분간 더 논의했는데 본격적으로 문제를 다룬 건 아니고 결론도 따로 난 게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논의가 이뤄졌다는 사실은 당일 최고위 브리핑에서 공개되지 않았다.

당시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했던 한 의원은 “회의 분위기가 최 의원 복당에 꽤 우호적이었다”고 전했다. ▶그만하면 반성의 시간도 충분히 가졌고 ▶지난해 4·9 총선에서 또다시 유권자의 선택을 받았으며 ▶동해·삼척 주민들도 최 의원의 평소 성품을 잘 알기 때문에 믿고 찍은 것 아니겠느냐는 논리가 주를 이뤘다고 한다. 이에 대해 박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가 아니라 사석에서 언급한 적은 있다”고 말했다.

주목할 점은 최 의원 복당에 대한 한나라당 지도부 여론이 나쁘지 않다는 사실이다. 한 동료 의원은 “복당 논의가 본격화하면 직접 나서서 옹호할 생각도 있다”고 말할 정도다. 박희태 대표도 최근 당 의원들과 당직자·출입기자들을 사적으로 만나는 자리에서 “최 의원이 복당하면 어떨 것 같으냐”고 물어보며 검찰 후배인 최 의원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드러내 왔다.

당내에서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조직 챙기기 차원에서라도 최 의원을 영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강원도 영동 지방에서 확고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최 의원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는 ‘현실론 이다. 일각에선 이달 중 슬그머니 복귀 절차를 끝마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반면 2월 2차 입법 전쟁과 4월 재·보선을 앞두고 이 문제가 부각돼 이로울 게 없다는 신중론도 만만찮다. 수도권 출신의 한 초선 의원은 “최근 강호순의 여성 연쇄살인사건 충격에 민주노총 성폭행 미수사건까지 겹쳐 시끌벅적한 마당에 왜 성희롱 파문의 당사자를 복당시키자는 얘기가 나오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며 “한나라당을 위해서나, 최 의원 본인을 위해서나 지금은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여성계도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4일 성명을 내고 “책임이 막중한 집권여당이 구차한 역할론을 빌미로 최소한의 도덕성조차 저버린 정치인을 다시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은 대한민국 여성들에 대한 기만이자 오만”이라며 “18대 총선 후보 공천 때 적용했던 엄격한 기준은 그새 어디로 갔느냐”고 일갈했다. 이어 “앞에서는 성폭력 방지법안을 만들면서 뒤에서는 당 내부 윤리규정마저 무시하면서 도덕적 해이를 저지르는 정당이 대한민국의 집권여당이란 현실이 개탄스럽다”며 “다시는 이런 논의들로 국민의 귀가 오염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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