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정치학회 서울대회 석학대담]이홍구 對 장 르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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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세계 정치학자들의 유엔총회' 라 불리는 세계정치학회 (IPSA) 서울대회가 오는 17~21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다.세계 1백30여개국에서 2천여명이 참석하는 이번 서울대회에는 세계적인 석학들도 대거 몰려온다.

그 첫번째로 세계정치학회 장 르카 회장과 이홍구 (李洪九) 서울대회 명예위원장 (전 국무총리) 의 대담을 내보낸다.

세계 정치학계의 대부인 르카 회장은 현재 파리정치대학 교수로 재직중이며 비교정치학의 권위자다.

▶이홍구 = 냉전시대가 끝나면서 현재의 세계는 긍정적 측면이 있는 반면 많은 문제점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독일이 통일되고 유럽통합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한국에서는 아직 분단상대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세계정치학회가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또 금세기로는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열린다는 것은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특히 정치학이 과연 인류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인지도 중요한 주제가 될 것입니다.

▶장 르카 = 세계정치학회 서울대회가 성공적인 대회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현재 세계는 지적한 대로 어려움을 안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각국 정부는 국민의 복지요구에 부응하고 완전고용등을 창출하는데 대부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국제경제의 압력도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 = 금세기가 끝나가면서 나타난 주요 경향은 세계적으로 진행된 민주화라는 큰 흐름과 함께 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경제 통합현상입니다.

민주주의는 더 많은 시민의 참여를 낳았고 나아가 이들의 정부에 대한 요구는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각국은 국제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국제경쟁에서 견뎌나가기 위해 효율성 제고를 위한 복지비 축소등의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특히 각국은 체제가 다르고 발전단계가 다르지 않습니까. 정치학의 과제중 하나는 이런 문제를 국제적 시각에서 정의하고 비교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르카 = 현재의 정치학은 그런 의미에서는 비교정치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국가를 다른 국가와 비교해 일반적인 점과 역사적.문화적 배경에 따른 특징을 정의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문제중 하나는 군사비와 복지비의 문제입니다.

물론 국민의 복지확보는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에 따라서는 방위문제가 더 중요한 부문일 수도 있습니다.

한 국가의 군사비와 사회복지비용을 비교해보는 것은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이 = 금세기에 중요한 문제중 하나는 이데올로기였습니다.

정치행위와 더불어 군사적 폭력까지도 정당화했습니다.

앞으로 이데올로기가 약화될 것인지도 관건입니다만. ▶르카 =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유용하다고 보며 이데올로기에 대한 균형적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데올로기의 중요성을 일면적으로만 강조하면 민족주의화 경향이 나타나지만 한편 이데올로기가 사회적 통합의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요는 이데올로기보다 정치적 회의 (懷疑)가 만연한 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정치가 국민의 요구에 적절히 대답하지 못할 때 정치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런던경제대학의 오크쇼트 교수가 지적한 대로 정치에 대한 선호와 회의에 대한 균형과 결합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 = 매우 흥미로운 얘기입니다.

한국의 예를 들면 몇십년간 권위주의적 통치를 통해 정부는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해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치에 대한 회의가 많이 생겨난데다 정치통합을 이룰 수 있는 가치의 공백상태도 생겨났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정치의 핵심은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잡는 것이었고 이것이 정치적 회의주의를 양산했습니다.

▶르카 = 민주화 과정에서 시민의 역할은 절대로 필요합니다.

시민들은 자신의 이익을 선거를 통해 찾아내야 합니다.

물론 선거를 통한 경쟁이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경우처럼 선거의 결과와 국민의 요구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 = 한국의 경우 한편으로는 세계화를 주창했던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지방자치선거를 실시하는등 세계화와 지방화가 동시에 진행돼 왔습니다.

이 두가지 경향을 어떻게 조화롭게 만들어나가느냐도 과제의 하나입니다.

▶르카 = 정치의 흐름도 이제 다차원 (멀티레벨)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소련에서처럼 정책결정이 독단적으로 이뤄졌지만 이제는 다양한 차원에서 결정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중앙정부를 약화시키기는 하지만 무정부상태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 = 마지막으로 정치학의 입장에서 다음 세기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도 정치학자로서는 중요한 과제일 것입니다.

▶르카 = 우선 정치학은 실제 정치에 대한 충고자의 역할을 해야합니다.

어떻게 과학적인 방법으로 실제 정치를 분석해 합리적 모델을 제공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실제 정치에 대해 긍정적으로 기여할 뿐만 아니라 정치현상 또는 실제 정책결정과정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것도 중요한 정치학의 의무라고 봅니다.

예컨대 일본등의 국가가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사회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정치현상에 대한 상호이해를 도모하고 특히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라고 봅니다.

또한 참여정치가 앞으로 더욱 활성화되도록 민주제도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도 중요한 정치학의 관심사라고 생각합니다.

▶이 = 한국정치학회는 이번에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세계정치학회를 서울에서 엽니다.

이번 대회를 통해 다음 세기에 대한 희망과 비전을 제시할 것을 기대합니다.

특별히 그동안 세계정치학회회장으로서 많은 노력을 해온 르카 교수의 노력에 대해 이 자리를 빌려 경의를 표합니다.

정리 = 김창호.김성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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