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 매너 괴짜 노래꾼 '어어부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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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요절한 미국 화가 바스키아의 전시회가 열리는 서울종로구사간동 현대화랑 바깥 마당에 그들이 섰다. 여러 개의 저울 위에 토마토와 빈 그림틀을 올려놓은 무대 꾸밈은 마치 설치작품 같았고,하늘색 수술복 아래 까만색 레이스 스타킹을 신은 리드 보컬의 차림은 막 행위예술이라도 시작할 법했다. 노래가 시작됐다.

나는 돼지다,밥먹는 돼지다,그냥 돼지다라는 노래(밭가는 돼지). 한 가장이 마시고 살던 산소가 한숨으로,한숨이 소주로,소주가 염산으로 바뀌어간 사연에 대한 노래(아름다운‘세상에’어느 가족 줄거리). 내 짝꿍의 소시지 반찬 맛있고,깍두기 반찬 맛없다는 노래(소시지 깍두기). 매일 난 일어나기 싫고,담요 속이 좋다는 노래(담요세상).

꺽꺽대는 절규 같기도 하고 타잔과 치타가 주고받는 비(非)분절음 같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던 보컬리스트는 잠시 관객에게 말을 걸었다. 여러분이 행복하길 바란다고,그러나 이런 세상에서 행복하기란 아예 글러버린 일이라고,그러니 꿈도 꾸지 말라고. 2백여 관객들의 박수 속에 마지막 곡이 끝났지만 앙코르는 받지 않는다고 이미 말한 터.

이네들이 바로 방송출연 한번 없이 입소문만으로 전해지는,기이한 무대매너의 주인공 어어부 프로젝트 밴드다. ‘어어부’는 고기잡는 사람이란 뜻의 어부(漁夫)와 어부(魚父:고기의 아버지)의 합성어. 무대 밖에서 다시 만난 것은 지난달 25일 공연 열흘 뒤,홍대앞의 녹음실에서였다.

세 사람 중 대중음악을 가장 오래 한 이는 베이스를 치는 장영규(30)씨. 뉴웨이브 그룹 ‘도마뱀’의 리더이기도 하다. 남들이 가요나 록 음반을 듣듯이 비행기소리·빗방울소리 효과음반을 듣는다. 원일(30)씨는 국악이 전공. 국악기뿐 아니라 동서양의 현대적이고 토속적인 각종 타악기에도 해박하다. 보컬리스트 백현진(25)씨는 ‘어어부’로 불린다. 무대설치와 퍼포먼스에는 미대생인 그의 아이디어가 많다. 노래 가사도 대부분 그가 쓴다.

원일:중학교때는 브라스 밴드에서 클라리넷을 불었다. 선배들을 따라 국악을 들으러 갔다가 그 소리에 이끌렸고,국악고에 진학했다. 그때 국악은 내게 ‘이국적인 소리’였다.

장영규:어려서부터 팝송을 많이 듣고,그러다 전자기타를 사고 그랬다. 남들처럼 말이다. 본격적인 시작은 늦게,대학졸업 후였다. 처음 한 것은 무대음악·무용음악이었다. 나는 음악보다 음향에 관심이 많다.

원일·장영규:대중음악과 국악의 만남? 그냥 소리 대 소리로 만나는 거다. 이런 소리도,저런 소리도 넣어보는 일종의 실험이다. 그걸 듣는 사람이 부담없이 대중적으로….

확실히 어어부밴드의 노래는 부담이 없다. 재미있다. 그러면서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정말 대중적일까? 올봄 네 곡을 담은 싱글음반 ‘손익분기점’이 나왔지만,백현진씨 말마따나 “손익분기점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말았다. 하지만 공연이라면 많이 한다. 그것도 게릴라식으로.

백현진:공연장에서 관객들을 휘어잡아 울게 하고,웃게 하고 싶지 않다. 세상은 아름답고,모든 게 잘될 거라고 노래하고 싶지 않다. 공연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현실에 대한 끈을,놓쳐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그 끈은 바로 긴장감 같은 것이다. 사람들이 내면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음악을 하고 싶다.

글= 이후남·사진=방정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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