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만화 수사' 탄압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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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만화판에 때아닌 공안 (公安)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인기만화가를 불러 조사하더니 구속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대본소와 출판사까지 들쑤셔댄다.

신문과 방송, 일부 시민단체까지 가세한 그 공안바람 속에서 힘없는 우리 만화가들은 시한부 절필이라는 자해적인 방법까지 동원하며 힘겹게 저항하고 있다.

만화 공안정국의 유일한 근거는 '만화의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이 청소년 정서를 병들게 한다' 는 것이다.

멀쩡하던 청소년이 만화 한 두편을 보고 폭력과 일탈 (逸脫) 의 비행을 저지르게 된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이런 논리 자체가 청소년을 독립된 인격적 주체로 간주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폭력적인 구조를 반영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저 어른들에게 복종하고 고분고분 말 잘들으면서 시키는대로 해야만 건강한 청소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폭력이며, 청소년들은 무조건 기성의 가치관에 따라 '훈육' 하고 '통합' 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폭력이다.

내 마음에 안들면 '저질' 이고 내 가치관에 맞지 않으면 '음란' 이며 나보기에 역겨우면 '폭력' 이라고 재단하는 것이야말로 폭력이다.

지금 검찰의 태도가 꼭 그런 것이다.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 의 예를 보자. 분명 '성인용' 임을 표방하고 있는 만화를 두고 '청소년에게 해가 된다' 며 문제삼는 2중 잣대는 둘째치더라도, 신화의 세계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 기준으로 황당무계할 수밖에 없는 만화의 몇몇 장면을 골라내 음란과 폭력의 잣대를 들이미는 무지야말로 폭력적이며 반문화적인 것이 아닌가.

'일진회' 와 '빨간 마후라' 사건이 터지자마자 문제의 본질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도 없이 모든 원인을 만화로 돌리며 쥐몰이하듯 하는 것이야말로 폭력적이며 선정적인 작태가 아닌가.

'나쁜 만화' 도 있지 않느냐고 할지 모른다.

물론 있다.

나쁜 만화도 있고, 나쁜 영화도 있고, 나쁜 소설도 분명히 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나쁜 교육이 있고, 더 나쁜 제도가 있고, 더 나쁜 어른들이 있고, 나쁜 가정이 있고, 무수히 많은 나쁜 사회가 있다.

나쁜 만화가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이란 나쁜 교육과 나쁜 사회가 미치는 악영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정말로 청소년을 보호하고 싶다면 청소년 체벌을 능사로 아는 교사로부터, 아들을 때리고 엄마를 때리는 폭력가장으로부터, 많은 청소년들을 일찍부터 절망과 소외에 빠뜨리는 교육제도로부터, 단란주점.룸살롱에서 딸같은 아이들을 희롱하는 어른들로부터, 목적이 모든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가르치는 정치인들로부터, 돈과 권력이 최고라고 가르치는 천민자본주의적 기성체제로부터 우선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이 땅의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가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들이다.

그런데 만화를 때려잡고, 영화 몇장면 못보게 하면서 청소년을 보호한다?

정말로 청소년들이 코웃음을 칠 노릇이다.

그렇게 엉뚱한 곳에서 마녀사냥을 벌이는 동안 진짜 고쳐져야 할 나쁜 사회는 굳건히 유지된다는데 문제가 있다.

만화와 영화에 대한 마녀사냥은 결국 기성사회가 가지고 있는 모순과 부패및 비리와 범죄에 대한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金昌南성공회대교수만화평론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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