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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프랑스의 낭만적 코스 Royal Mougins GC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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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느 시내에서 북쪽으로 10분, 오르막 도로를 오르다 보면 중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마을 무젱(Mougins)을 만난다. 번잡한 칸느 바로 옆 동네임이 믿어지지 않는 소박한 분위기…. 규모는 작지만 중세의 고풍스런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조용한 이 마을은 세계적인 스타들을 단골로 두고 있는 레스토랑들로도 유명하다. 또한 피카소가 생을 다하는 순간까지 이 곳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살았기 때문에 마을 곳곳에서 피카소의 흔적을 찾아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은 역시나 골프였다. 칸느에서 일정을 마치고 니스로 넘어가려던 차에 무젱에좋은 골프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니스에는 전세계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누드 비치가 있었다. 골프장 소식을 듣기 전까지 우리 가슴은 니스를 향해 뛰고 있었다. 하지만 코트다쥐르 지역 내에서는 엄지 손가락에 꼽히는 골프장, 프랑스 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골프장이라고 하니 무림 강호를 떠돌며 무예를 연마하고 있는 골프 자객들의 발길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결국 우린 북쪽 도로를 탔다.

마을의 중세 분위기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모던한 리조트형 골프장 Royal Mougins Golf Club. 1993년에 개장한 골프장이라 클럽하우스와 리조트 건물이 모두 최신식이었다. 오래된 돌담으로 쌓여 올려진 테라스, 코스에 흩어져 있는 올리브 나무들이 지중해 색을 더하고 있었다. 지중해풍의 베이지톤 벽과 주황색 지붕 색감의 건물 또한 초록 필드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코트다쥐르의 지역색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Royal Mougins이 지금의 모습으로 업그레이드를 시작한 것은 2003년 말 골프장의 주인이 바뀌면서부터. 유럽에서 유명한 의류 회사가 골프장을 인수하여 대규모 자본과 열정을 투입하면서 골프장은 환골탈태를 시작했다. 골프장과 클럽하우스를 재단장하고 스파와 헬스클럽을 신설하는 등 진정한 리조트의 모습을 갖춰갔다. 이 프로젝트는 2008년까지 5년간 진행되었고 덕분에 골프장은 남부 프랑스에서 가장 좋은 골프장, 프랑스 전체에서도 탑5에 꼽히는 수준이 되었다고.

과연 니스의 누드 비치를 포기하고 핸들을 꺾은 보람이 있었다. 평평한 프랑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굴곡의 산악형 코스. 마치 골프장 전체가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는 듯 깊은 산중의 느낌이었다. 특히 워터 해저드가 화려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폭포와 개울, 습지를 동반한 8개의 개울들이 코스와 얽히면서 변화 무쌍한 레이아웃을 연출하고 있었다. 무려 12개의 홀이 이 워터 해저들과 얽히면서 난이도를 높이고 있었다. 독특한 모양의 벙커들이 여기저기 복병으로 자리잡았고 티잉그라운드의 고도 변화가 커서 이 클럽 저 클럽을 들었다 놓았다 망설이게 만들었다. 스코어 관리를 위해서는 코스 매니지먼트가 필수였다.

시그니쳐 홀은 단연 두 번 째 홀. 183m 파3 홀인데 맞바람이 없으면 두 클럽 이상 짧게 잡아야 할만큼 티잉그라운드가 높았다. 마치 산 꼭대기에서 아래를 향해 내리꽂는 형국이었다. 고도 뿐 만 아니라 그린 앞에서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워터 해저드 때문에 거리가 조금만 짧으면 양파로 직행, 조금만 길면 낭떠러지 OB행이었다. 윗 바람이 있었는지 거리 계산이 소심했는지 둘 다 가까스로 연못은 넘겼지만 그린에는 미치지 못한 애매한 곳에 공을 떨어뜨리고 하산 하듯 티잉그라운드를 내려왔다. 이후로도 코스 경사가 심해 페어웨이에 안착하지 못하면 볼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홀들이 이어진다.

무엇보다 반가웠던 것은 그늘집이었다. 전반 홀을 마치고 만난 그늘집은 샌드위치와 음료수, 스낵류들이 갖춰진 한국적 그늘집이었다. 그 때까지 영국이든 프랑스든 그늘집 다운 그늘집을 만난 적이 없었기에 테라스 테이블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샌드위치를 씹으며 뒷팀들을 계속해서 패스 시켰다. 하지만 이상하게 외국에만 나가면 더욱 국수주의 입맛이 되어버리는 나에게 마른 바게트빵 사이에 치즈와 햄, 채소를 끼워 넣은 샌드위치는 곤혹스러웠다. 입천장만 까진 채 허기를 채우지는 못했다. Mougins은 워낙 유명한 레스토랑들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칸느 영화제 무렵에 이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면 내로라하는 전세계 스타들을 거의 만날 수 있다고. 그런 마을에서 배를 곯으니 더욱 허기가 졌다.

하지만 올리브 나무 사이의 거칠고 가파른 코스에서 느껴지는 남프랑스의 정취는 매력 충만이었다. 그리고 이 코스가 앞으로 이어질 지중해 골프장들의 예고편이라 생각하니 더욱 가슴이 뛰었다. 특히 코스 옆을 지나는 철길이 전세계 향수의 본고장인 Grasse로 통하고 있으니 기차가 지나갈 때엔 눈을 꼭 감고 바람의 향기를 맡아보라던 코스 매니저의 말… 아 이 주체하지 못할 낭만하고는….

이다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