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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출퇴근 천국 유럽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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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일


자출은 행복하다. 하지만 국내 실정은 어떤가. 자전거 도로는 1㎞도 못가 끊기기 일쑤다. 초보 라이더들은 야간에 후미등을 3개나 달고도 용기가 나지 않아 차도 라이딩을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 유럽처럼 자전거 표지판, 자전거 신호등을 따로 만들어 달라고 하면 입만 아플 뿐이다. 64일간의 유럽 자전거여행을 담은 <바이시클 다이어리>를 쓴 자출족 정태일씨(30)의 경험담을 들어봤다.

자전거, 교통수단인가 장난감인가

정씨는 2005년 7월부터 9월까지 유럽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다. 열심히 취업준비를 해도 모자라는 시기에 그가 자전거를 타고 유럽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한 건 무의미한 구직활동에 벗어나 20대의 열정을 되찾고 싶어서였다. “왜 하필 유럽으로 자전거를 타러 갔느냐”라는 질문에 그는 “선진 자전거 문화를 체험하고 싶어서였다”고 주저없이 대답했다.
자전거 도로가 인도에 섞여 있는 서울과는 달리 프랑스 파리의 시내 한복판 도로에는 거의 대부분 자전거 도로가 함께 나 있어 그의 자전거 여행은 생각보다 큰 위험이 없었다고 한다. 위험 부담이 적어 ‘유럽의 아이들은 걸음마보다 자전거를 먼저 배운다’는 말이 있을 정도란다. 특이한 점은 자전거도 차와 마찬가지로 좌회전이나 우회전을 하고 싶으면 수신호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라이더가 수신호를 하면 운전자들은 짜증을 내지 않고 멈추거나 조심스레 속도를 낮춘다. 유럽의 도로에는 차와 사람과 자전거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사이좋게 나아간다. 서울의 꽉 막힌 도로만 보던 그에게는 무척 낯설고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정씨는 “자전거 도로는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사람에게도 차에게도 찬밥 신세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는 한국의 라이더들은 자동차와 나란히 달릴 수 없는 것이 그 증거라며 “자전거로 광화문 네거리를 달려보라”고 말했다. “샹젤리제 거리를 달리는 것과는 분명이 상황이 다를 것”이라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이리저리 떠밀린 한국의 라이더들은 한강 다리 밑으로 요리조리 꼬여 있는 자전거 도로를 찾아 페달을 밟을 수밖에 없다. 같은 길도 멀리 돌아가야 하는 어려움은 곳곳에 늘려있어 “자전거는 차도나 인도 양쪽에서 소외받는 교통수단이고 심지어는 경품이나 장난감 정도로 인식되기도 하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라고 말한다면 너무나 씁쓸한 현실일까.

독일 하이델베르크 중심지 비스마르크 광장.


자전거 배려 문화는 선진국의 지표

“유럽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며 정는 유럽의 자전거 문화가 무척 부러웠다고 말한다.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 한편으로 자전거 도로가 동등한 수준으로 나 있고, 또 운전자들은 자전거 도로를 유유히 달리는 라이더에게 호의적이다. 출퇴근 시간 구름처럼 떼지어 몰려가는 자전거의 행렬, 그리고 국회나 주요 관공서, 학교, 상가, 기차역 앞에 빼곡히 세워진 자전거를 보면 유럽의 자전거 문화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자전거 전용도로는 정확하게 나눠진 차도와 인도 사이에서 제자리를 분명하게 차지하고 있다. 유럽에서 자전거는 엄연히 하나의 교통수단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그는 “대부분의 유럽국가에서 자전거는 자동차보다 모든 신호에서 한발 앞선다는 느낌까지 든다”며 “자전거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자전거가 수신호를 하면 모든 차들은 기다리는 걸 흔히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유럽에서 목격한 가장 놀라운 광경은 두 다리가 불편한 자전거 여행객이 누워서 팔로 페달을 밟는(페달을 밟는다기보다는 ‘젖는’) 모습이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감동적인 모습이 있다. 고속도로로 이어지는 길에서 방향을 잘못 튼 자전거 뒤로 묵묵히 쭉 늘어선 자동차의 행렬이었다. 운전자들이 뛰어나와 욕설을 내지르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마도 운전자들 모두가 자전거를 이용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자전거와 동일시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이런 현상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끔찍한 상소리가 오가고 몸은 물론 마음까지 한참 불편했을 게 분명하다.

정태일씨가 ‘로맨틱 가도’로 불리는 독일 중남부에서 남쪽으로 오스트리아 국경으로 이어지는 360km에 이르는 도로를 달리고 있다.

자전거 바퀴처럼 둥글둥글한 세상

정씨는 자전거 바퀴처럼 둥글둥글한 세상을 꿈꾼다. 자전거와 자동차가 사이좋게 달리는 광화문 네거리를 꿈꾸는 것이다. 지하철에서도 ‘자전거전용’칸을 만들어 아침 출근시간에도 눈치 안 보며 자전거를 싣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한국의 자전거 문화를 부러워할 10년 후의 유럽 라이더들의 얼굴을 상상하며 그는 오늘도 자전거 안장에 엉덩이를 누인다.

tip 자출족 정태일이 부러워하는 ‘유럽의 자전거 문화’ 4가지
* 유럽의 신호등은 자동차, 자전거, 사람으로 나누어져 초보자라도 안심하고 자전거를 탈 수 있다.
* 자전거 도로, 파노라마 포인트, 자전거 정비소, 여행자숙소 등 정보가 한 눈에 담긴 자전거 전용지도를 쉽게 구할 수 있다.
* 지하철, 버스 등을 비롯한 모든 교통수단에 자전거를 실을 수 있다.
* 격식보다 실속을 따지는 유럽에선 쫄쫄이 바지를 입지 않고 자전거를 타는 풍경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장치선 워크홀릭 담당기자 charity1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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