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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돈부시교수 "한국도 '태국통화위기' 영향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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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태국 바트화에서 시작된 동남아 통화위기가 일단 소강국면에 접어들었다.

동남아 각국에 몰아닥친 통화위기의 배경은 무엇이며 우리는 그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는지를 이 문제에 정통한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루디거 돈부시 (MIT) 교수의 기고를 통해 알아본다.

태국통화의 폭락과정은 흥미로운 연구과제다.

태국경제는 낮은 인플레, 보수적인 재정정책, 높은 저축률등 이른바 아시아식 고성장경제였다.

유일한 문제는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였으나 상당기간 별 문제 없이 유지돼 왔다.

태국통화는 과거 15년간 실질환율이 15%이상 절상됐으나 환율이 두배이상 고평가됐던 중남미에 비하면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태국은 또 위기가 시작될 무렵 상당히 많은 외환을 보유하고 있어 투기적인 공격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태국의 국가위험도 평점은 줄곧 A였고 올 4월까지도 태국을 즉각적인 붕괴 대상에 올려놓은 금융기관의 보고서는 한건도 없었다.

태국의 문제는 경제의 '취약성' 이었다.

취약성이란 한가지가 잘못되면 모든게 한꺼번에 잘못된다는 걸 의미한다.

태국의 경제위기는 금융기관의 부실에서 시작됐으나 곧 단기외채의 누증 (累增) , 해외자금 조달의 애로, 정책의 투명성 결여, 부패의 만연등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총체적인 위기로 치달았다.

이런 상황에서 외부적인 충격파에 대비할 여유를 갖기는 어렵다.

태국 중앙은행은 국내 금융시스템을 정비하고 신중하면서도 신축적인 변동환율제도를 도입할 시기를 놓쳤다.

인위적인 환율유지는 태국에 엄청난 비용을 치르게 했다.

막강한 외환보유의 환상에 사로잡힌 중앙은행은 투기세력에 물량으로 맞서다 지고말았다.

뒤늦게 자본통제로 사태를 역전시키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태국의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위기는 어떻게 발생하는가 = 위기 직전에는 폭풍전야의 고요가 있다.

일상생활은 변함없이 이어지고 투기적인 통화교란도 없다.

통화위기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따돌림을 받는다.

혁신적인 조치에 대한 말은 많지만 대규모 경상적자와 금융시스템의 붕괴등 경제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사실은 전면에 부각되지 않는다.

그러다가 시장은 순식간에 최악의 시나리오로 치닫는다.

▶초기에 취약성을 피하라 = 건전한 거시경제운용은 경제정책수단을 극단으로 몰고가지 않는 것이다.

인플레 억제를 위해 환율정책을 극단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단기외채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으며, 환율에 대해 무모한 고집을 부리지 않아야 한다.

정책수단에 다소의 여유를 두되 투명성을 최대한 높여야 한다.

▶대세를 거스르지 말라 = 중앙은행이 아무리 자본통제를 하더라도 투기세력을 완전히 물리칠 수는 없고 인위적으로 높인 이자율을 영원히 유지할 수도 없다.

중앙은행이 무제한의 외환보유액을 가진 것도 아니고 정치적으로 운신의 폭이 넓지도 않다.

결국 중앙은행은 굴복할 수밖에 없고 이같은 상황이 투기세력의 움직임을 더욱 부추긴다.

환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환율변동을 허용해야 할 때는 평가절하보다 인플레를 감수하고라도 자유변동 환율제를 택해 시장이 자구책을 찾도록 하는게 현명하다.

▶정책 당국자를 믿지 말라 = 정책 당국자들이 사태의 진상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실수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사정을 알면서도 현실을 부정하고 면피할 길을 찾는다.

결국 사태가 악화될대로 악화되고 나서야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국제통화기금 (IMF) 찾도록 하는게 현명하다.

▶정책 당국자를 믿지 말라 = 정책 당국자들이 사태의 진상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실수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현실을 부정하고 면피할 길을 찾는다.

결국 사태가 악화될대로 악화되고 나서야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국제통화기금 (IMF) 은 부르기 전엔 오지 않는다 = 멕시코사태 이후 통화위기와 감시체계에 대한 수많은 논의가 있고나서 대규모 통화위기는 없을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IMF는 이번에도 태국의 경상적자 확대와 금융시스템 붕괴, 대규모 단기부채의 위험성을 경고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IMF를 비난할 건 못된다.

병원이 환자를 강제입원시키려고 구급차를 보내지는 않는 법이다.

▶통화위기는 새로운 양상으로 확산된다 = 새로운 위기는 잘못된 신화가 깨지면서 드러난다.

풍부한 외환보유액은 통화방어에 효과적인 수단이긴 하지만 태국사태에서 그것만으론 안전하지 않다는게 드러났다.

또다른 신화는 '아시아경제는 무언가 다르다' 는 것이지만 이번 사태로 환투기 대상엔 예외가 없음이 입증됐다.

외국인 투자가 이어지는한 경상적자의 확대는 괜찮다거나 외채가 민간이 빌린 것이라면 문제가 안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잃었다.

▶근본적인 개혁이 없는한 위기는 끝난게 아니다 = IMF가 개입해 긴축정책과 은행개혁등 전통적인 처방전을 시행하기 전에는 동남아 통화위기가 완전히 해소됐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일단 한 나라의 통화가 대규모 투기적인 공격을 받게 되면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수술이 없는한 어려운 상황은 계속될 것이다.

IMF의 처방을 받아들여야 통화가 안정되고 증시가 살아날 것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금융붕괴와 성장둔화가 어디까지 진행되느냐다.

▶다음은 누구 차례인가 = 태국이 막판에 몰린 뒤 필리핀이 먼저 무너졌고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가 그 뒤를 따랐다.

위기의 가능성은 싱가포르마저 위협하고 있고 한국도 그 파장안에 있다.

또 중남미도 심상치 않다.

브라질의 위험성이 두드러진 가운데 페루.멕시코.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콜롬비아등의 위기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정리 = 김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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