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관세 전쟁’ 땐 세계 무역 8% 감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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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호 04면

‘친디아(Chindia)’라고 불리는 인도와 중국이 최근 장난감을 놓고 무역전쟁을 치르고 있다. 인도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AFP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인도 정부는 지난달 23일부터 6개월간 중국산 장난감 수입을 금지했다. 공공 보건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 것 외에 구체적인 이유도 밝히지 않았다.

경제위기 이후 높아지는 무역장벽

그러자 중국이 발끈했다. 중국 정부는 성명을 내고 “양국 무역 관계가 심각한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수입금지를 해제하지 않으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러나 인도는 한발 더 나가 중국산 철강·섬유·화학 제품의 수입도 제한했다.

중국에선 지난해 8000여 개의 장난감 수출 업체 중 4000여 개가 문을 닫았다. 납 성분 검출로 인한 대량 리콜과 세계적인 경기 침체에 따른 수출 부진이 겹쳤기 때문이다. 인도는 인도대로 고민이다. 200만 명에 달하는 장난감 산업 근로자들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도 장난감 시장의 중국산 점유율은 약 60%나 된다.

WTO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세계 경제위기 발생 이후 인도·에콰도르·인도네시아·아르헨티나·러시아와 유럽연합(EU) 등이 잇따라 무역장벽을 높였다. 인도는 지난해 11월 철강제품의 수입 관세를 올리는 등 수입제한 조치를 취했다. 에콰도르는 940개 품목의 수입관세를 5~20% 인상했다. 인도네시아는 전자·의류·장난감 등 주요 수입품을 지정된 항구와 공항에서만 통관 절차를 밟을 수 있게 했다. 아르헨티나는 자동차 부품과 섬유·TV 등 이른바 ‘민감한’ 품목에 대해 수입허가제를 실시했다. EU 집행위원회는 낙농업자들을 위해 버터·치즈·분유 등에 수출보조금을 도입했다. 러시아는 승용차와 트럭의 수입관세를 25%에서 30%로 올렸다. 유류 할당관세를 1%에서 3%로 인상키로 결정한 한국도 무역장벽을 높인 사례로 꼽혔다. 브라질·아르헨티나 등 남미 5개국이 참여하는 메르코수르는 지난해 11월 공동 관세를 5%포인트 올리기로 합의했다가 나중에 없던 일로 하기도 했다.

보고서는 “WTO 협정에 따라 허용된 범위라도 회원국들이 계속 관세를 올리고 수출보조금을 늘린다면 보호주의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며 “만일 모든 회원국이 관세를 허용된 최고 수준까지 올린다면 세계 무역은 8% 정도 감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WTO가 추산한 세계 교역량은 지난해 3분기 감소세(전년 대비)로 돌아섰으며, 연말로 갈수록 감소폭이 커졌다. 지난해 연간 교역량은 4% 증가하는 데 그쳤다.

아직까지 인도와 중국을 제외하면 심각한 무역 분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올해는 수입품에 덤핑 판정을 내려 특별 관세를 부과하거나 수입을 제한하는 조치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WTO는 보고 있다.

파스칼 라미 WTO 사무총장은 9일 이 보고서를 토대로 회원국 대사들과 특별회의를 열고 보호주의의 확산 가능성을 경고했다. 라미 총장은 “회원국들의 취약한 경제전망은 시장접근을 차단하고 경쟁을 왜곡하는 조치의 도입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특히 무역의존도가 높은 개발도상국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개별 국가의 무역이익과 다자간 무역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보호주의가 출현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WTO는 자국 산업 보호 움직임이 확산하는 현상도 주목했다. 미국·프랑스·독일·캐나다 등 주요 선진국이 잇따라 금융과 자동차 산업에 긴급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현재로선 이런 조치로 인한 무역 분쟁 가능성은 엿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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