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북카페] 모성, 본능인가 역사가 만들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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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만들어진 모성
엘리자베트 바댕테르 지음, 심성은 옮김
동녘, 416쪽, 1만6000원

‘어버이날’은 원래 ‘어머니날’이었다. 한국에서 어머니날은 1956년에 시작됐다. 한국전쟁에서 죽은 ‘아버지’들의 빈자리를 대신해 ‘모성(母性)’이 가족을 이끄는 힘이 돼야 했다. 국가는 모성에 의탁해 ‘조국의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을 길러내야 했다.

모성과 부성(父性). 똑같은 어버이의 심성일 텐데 느낌이 다르다. 모성은 ‘본능’과 결합하는 것 같고, 부성은 ‘감정’의 영역 정도로 취급된다. 결혼도 하지 않은 처녀에게서도 ‘모성 본능’을 읽어내는 이들이 많지만, 자식이 없는 남성에게서 ‘부성애’를 발견하는 건 쉽지 않다. 그야말로 모성은 본능일까.

이 책은 ‘모성’은 사회적·역사적 창작물이라고 주장한다. 역사적 국면에 따라 모성에 대한 사회적 규정은 유동적이었다. 특히 17~18세기 프랑스에서 ‘모성’은 존재도 찾기 어려웠다. 당시 도시에 사는 어머니들이 시골의 유모에게 갓난아이를 맡기는 것은 사회적 관습이었다. 전 계층에서 아이는 시골의 유모에게 보내졌다. 무관심과 비위생적 환경 속에서 숱한 영아들이 죽어나갔지만 어머니들은 눈물 짓지 않았다. 1780년 파리의 신생아 2만1000명 중 2만 명이 유모의 손에서 키워졌다. 아이들은 살아남은 뒤에야 너댓살 때 ‘친 엄마’에게 ‘입양’됐던 것이다. 19세기에 이르러 ‘인구 증식이 곧 국부’라는 주장이 퍼진다. 영아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어머니의 손길이 국가적으로 요구됐다. 이런 상황에서 모성애는 ‘여성의 본능’이 돼 버렸다. 역사적으로 이렇게 유동적인 심성을 과연 여성의 ‘본능’이라 할 수 있을까. 페미니즘의 시각이 가족·아동·사랑의 역사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엮어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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