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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다윈 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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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위노나 라이더 주연의 영화 ‘다윈 어워드(The Darwin Awards, 2005)’는 다윈 상 수상자와 주위 여건의 상관관계를 추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여기서 다윈 상이란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윈을 기념해 제정된 상이며, ‘자연선택설에 입각해 그들 자신을 제거함으로써 인류의 유전자 개선에 공헌한 사람들’을 추모하는 상이라는 설명이 등장한다.

복잡하지만 풀어 설명하면 ‘살아 있었다면 인류의 형질 개선에 별 도움이 안 될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려, 자신들의 어리석음이 후손들에게 유전되지 않도록 해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주는 상’이라는 뜻이다.

영화 속 이야기라면 아무래도 상관없겠지만 실제 존재하는 이 상(http://darwinawards.com)은 1985년부터 매년 수상자를 배출해 왔고, 수상자들의 어처구니없는 사연을 담은 책들도 여러 차례 발간됐다.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콜라 캔을 공짜로 빼내려다 자동판매기에 깔려 죽은 사람, 요트의 구멍을 테이프로 막고 항해하다가 물에 빠져 죽은 사람, 아내에게 위자료로 집을 주라는 판결이 나오자 집에 불을 질렀다가 타 죽은 사람 등이다.

코믹하긴 하지만 한국적인 기준에서 볼 때에는 어쨌든 생명을 잃은 사람들의 사연을 웃음거리로 삼는다는 게 그리 편치는 않다. 유명인들의 사망 기사에 달리는 인터넷 악플들을 연상시키는 구석도 있다. 이런 장난에 자신의 이름이 쓰인다는 데 대해 다윈은 어떻게 생각할까.

다윈의 이론이 인류의 지성 발전에 기여한 내용이야 굳이 재론할 필요도 없지만, 한편으론 그의 주장이 약자에 대한 강자의 억압을 합리화하는 데 악용되어 왔다는 비판도 항상 따라다닌다. 다윈이 없었다면 우생학이나 나치의 홀로코스트도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바로 그것이다.

문화계에서도 가끔은 다윈을 원망하는 일이 생긴다. 시청률에서 경쟁 방송에 뒤지는 프로그램은 당장 폐지되어야 하고, 박스 오피스를 장악하지 못하는 영화는 사라져 마땅하다는 주장 때문이다. 다행히도 가끔씩 독립영화 ‘워낭소리’가 50만 관객을 동원하는 기적이 일어나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지난 12일 다윈 탄생 200주년을 맞아 세계 각국에서 축하 행사가 열리고 있지만 인류는 그동안 그의 가르침을 빙자해 저질러온 수많은 바보짓에 대한 반성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다윈 상의 존재 의미는 어쩌면 그런 실수들을 잊지 말라는 반면교사일 수도 있겠다.

송원섭 JES 엔터테인먼트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