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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내린 2004 안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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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부문 대상을 받은 미국 애니메이션‘로렌조’

▶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은 캐나다 단편‘라이언’

▶ 2004 안시 페스티벌 포스터

12일(현지시간) 막을 내린 2004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은 1000여편 장.단편 출품작을 통해 전 세계 애니메이션의 현주소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1990년대 중반 이래 세계 애니메이션의 주요 흐름으로 떠오른 컴퓨터 테크놀로지에 대한 관심과 실험은 올해의 출품작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단편부문의 경우 목판화.수묵화 기법을 응용하거나 인형과 점토를 사용하는 다채로운 기법이 등장한 가운데 3D(3차원)와 2D(2차원) 같은 컴퓨터 기법으로 전통적인 수작업을 대체한 애니메이션이 대세를 이뤘다.

*** 실사 이미지에 3D 덧입혀

자신의 꼬리와 실랑이를 벌이는 고양이의 유희적인 움직임을 담아낸 미국 단편 '로렌조'가 대표적이다. 펜 터치가 생생한 전통적인 그림체와 3D의 역동적인 기법을 조화시킨 수작으로, 단편부문 대상을 받았다.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캐나다 단편 '라이언'역시 관객의 기대를 한 단계 뛰어넘는 기술력과 그에 걸맞은 상상력을 보여줬다. 캐나다 애니메이션의 선구자였으나 창작을 그만두고 부랑자처럼 살다시피했던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실사 영상에 기묘하고 초현실적인 3D 이미지를 덧입히는 실험적인 기법으로 선보였다.

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중국단편 '길'의 실험 역시 이채롭다. 가장 손맛에 의존하는 기법 중 하나로 여겨져온 수묵 애니메이션의 먹선과 그 번짐까지를 모두 3D 컴퓨터 애니메이션으로 재연해냈다. 이처럼 올해 안시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들은 전통적인 기법과 첨단기술을 대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둘 사이의 무한한 시너지 효과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오세암'과 함께 장편부문 경쟁에 오른 다섯 작품 중에도 프랑스.캐나다.스페인의 합작품인 'P3K 피노키오 3000'같은 100% 3D 애니메이션은 첨단 컴퓨터 기술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유럽 애니메이션의 시도를 보여줬다.

하지만 장편의 경우 기술력만으로 관객의 호평을 받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이야기나 이미지 자체의 힘이 강렬한 작품들이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 '나는 이상한 사람과 결혼했다''뮤턴트 에일리언'등으로 유명한 미국 감독 빌 플림턴의 신작 장편'헤어 하이'의 경우 50년대 청춘에 바치는 송가 같은 내용으로, 전통적인 제작기법대로 한 장 한 장의 그림을 대부분 혼자서 그린 작품이다.

한국장편'오세암' 도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한국적인 이미지와 조화를 이뤘다는 점에서 관객반응이 좋았다. 결말부분의 비극적인 여운 때문에 한층 숙연해진 객석 곳곳에서는 눈물을 훔치거나 진심어린 박수를 보내는 모습이 목격됐다.

한국특별전 프로그램으로 상영된 '원더풀 데이즈'의 경우 기대 이상의 열띤 반응을 얻어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미니어처로 제작된 모형을 실사촬영해 3D로 전환한 배경그림과 2D로 그린 등장인물을 결합해 만들어낸 독특한 이미지에 젊은 관객들은 휘파람을 불며 환호했다. '원더풀 데이즈'는 지난해 국내개봉 당시와 다소 달라진 편집본으로 프랑스에서 개봉을 앞두고 있다.

단편 중에는 경쟁부문과 한국특별전 양쪽에서 상영된 김준기 감독의 '인생'이 현지 언론과 애니메이션 학계 관계자들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처럼 올해 안시 페스티벌은 사상 처음으로 한국특별전이 열려 더욱 의미가 컸다. 2002년 안시에서 장편부문 대상을 받아 관객들의 뇌리에 한국 애니메이션에 대한 강한 인상을 남겼던 '마리 이야기'등 장편 5편과 'A Little Madness' 'Think Twice and Laugh' 'My Childhood' 'Making Style' 등 4개의 주제로 나뉜 단편 47편 등 모두 50여편의 작품이 상영됐다.

*** 美 단편 '로렌조' 영상 독특

한국의 단편 애니메이션이 이처럼 대규모로 해외에 소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상영작들은 그동안 하청산업 위주로 인식됐던 한국 애니메이션의 다양한 저력을 세계에 확인시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예술감독 세르주 브롱베르를 비롯한 현지 관계자들은 "할리우드와 일본을 제외하면 유럽에서도 연간 장편 한 편씩을 내놓는 나라가 드문 형편"이라면서 "한국의 꾸준한 장편 제작과 다양한 이미지의 실험, 급속한 기술발전이 놀랍다"고 입을 모았다.

안시(프랑스)=황혜림 <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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