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세 딸을 위한 기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 이수영.19기 주부통신원

임신을 집안에 알렸을 때 시외할아버지께서는 "넌 착해서 아들 낳을 게다"라고 하셨다. 하지만 난 딸만 셋을 두었다. 그것도 다섯살 터울이다 보니 결혼 후 15년 동안 출산과 육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딸부자 엄마'가 된 뒤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일이 많다. "아이구, 다 그 집 딸들이요?"하는 택시 기사아저씨부터 "쯧쯧, 하나 더 낳아야겠구먼"하시는 동네 할머니까지. 하지만 가장 힘이 빠질 때는 여성에 대한 편견에 부닥칠 때다.

아들을 잘 키우려 노력하는 것은 당연시하면서 딸에게는 "콤플렉스가 있어 그렇다""극성이다""너무 똑똑한 여자는 결혼을 잘 못한다"는 등의 말을 쉽게 한다. 남녀 공학인 중.고등학교에 아들을 보내는 엄마들은 "수행평가에서 여자애들 때문에 손해본다"고 불평하곤 한다. 아들 엄마의 항의에 선생님이 조사해봤더니 실제로는 수행평가보다 시험성적에서 차이가 더 많이 났다는데도 말이다.

또 여학생들이 문자 보내고 선물 보내고 사귀자고 해서 자기 아들이 공부를 못한다고, 여자가 무섭다는 엄마들도 있다. 아들만 둔 엄마 중에는 "딸만 있는 엄마와는 얘기가 안 통해 못 사귀겠다"는 이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아들만 낳았어도, 내 아들은 딸만 낳기도 하는 것이 세상 모습이 아니던가.

'남의 집 귀한 자식'이라는 말의 깊은 뜻을 내 자식을 낳아 본 뒤에야 알게 됐다.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우리 딸들은 "여자는 이러해야 한다"는 말 대신 "인간은 이러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고 자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매일 기도하며 산다.

"하느님, 오늘도 이웃집 아들을 내 딸처럼 사랑하게 해 주시고, 이웃집 엄마도 내 딸들을 자기 아들 같이 아끼게 해 주소서."

이수영.19기 주부통신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