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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 기자의 웰컴 투 풋 볼 <61> ‘불운한 축구천재’ 고종수를 보내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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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테헤란 에 있는 이란 축구대표팀 트레이닝센터에서 8일 열린 한국팀 훈련에서 ‘쌍용’ 이청용(左)-기성용이 2인 1조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테헤란=연합뉴스]

 고종수(31)가 축구화를 벗었다. 그는 영욕의 그라운드를 떠나 푸른 꿈을 키웠던 고향 여수로 내려갔다. 한국 축구의 지각을 흔들어 놓았던 이 천재는 “모든 것을 가슴에 묻고, 평범한 축구팬으로 살아가겠다”고 했다.

광주 금호고 3학년 때인 1994년 청소년대표에 선발된 고종수는 18세3개월의 역대 최연소로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대표에 뽑힌다. 그리고 스무 살 나이에 98 프랑스 월드컵에 출전한다. 수원 삼성에서 98, 99년 K-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한때 3000명 이상의 팬을 몰고 다녔다.

그러나 부상의 악령은 그를 쉼 없이 괴롭혔다. 97년 왼 무릎 부상을 시작으로 98년 오른쪽 발가락 피로골절, 99년 왼 무릎 연골 수술이 이어졌다. 2001년에는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치명적인 부상을 당했다. 결국 지난해 재발한 왼 무릎 부상이 그를 그라운드에서 끌어냈다.

고종수는 왜 끊임없는 부상에 시달리다 자신의 시대를 허망하게 접은 것일까. 웰컴투풋볼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했다. 국가대표팀 1호 팀닥터였던 나웅칠(47) 박사다. 그는 88년부터 95년까지 청소년·올림픽·국가대표팀에서 선수들의 부상을 치료하고 재활을 도왔다.

나 박사가 분석한 고종수의 가장 큰 문제는 ‘오버 트레이닝’이었다. 고종수는 고교 시절부터 각급 대표팀에 뽑히면서 혹사를 당했다. 훈련과 경기에 내몰렸지만 회복과 건강 관리에는 소홀했다. 오버 트레이닝이 지속되면 심박 수와 혈압이 올라가고, 식욕 감퇴·불면증·정서 불안이 올 수 있다. 또 기초대사량이 상승해 근육량이 감소하며, 작은 충돌에도 부상을 당하게 된다.

영양 불균형도 선수 생명에 치명적이다. 하루 4000㎉를 섭취하고 5000㎉를 훈련으로 소모했다면 매일 1000㎉의 영양 결핍이 생긴다. 이렇게 되면 인체는 근육 속 에너지를 가져다 쓰고, 그것도 부족하면 뼈의 칼슘을 쓰게 된다. 이게 소위 ‘골병 든다’는 단계, 피로골절로 연결되는 것이다.

고종수는 술을 마시고 말썽을 일으킨 적이 많았다. 갑자기 찾아온 유명세, 부상에 대한 공포, 과중한 부담감 등이 그를 술의 유혹에 빠져들게 했다. 나 박사는 “장기간 알코올을 섭취하면 마그네슘 결핍으로 근육 경련이 발생하며, 뼈의 칼슘량 저하, 탈진 등으로 연결된다. 음주를 즐기는 선수는 필요 없는 부위에 지방이 축적돼 쉽게 부상을 당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과도한 훈련과 혹사, 본인의 관리 부실이 선수 생명을 갉아먹은 것이다.

축구팬은 고종수의 창의적인 패스를 다시 볼 수 없음을 아쉬워한다. 그러나 제아무리 뛰어난 선수가 나오더라도 과학적인 훈련·휴식·영양 프로그램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제2의 고종수’가 될 수밖에 없다. 선수 본인의 절제와 자기 관리가 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고종수는 “너무 나쁜 놈으로 기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당연히, 그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불운한 천재로 기억될 것이다. 행운을 빈다.

정영재 기자·축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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