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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서>문민정부의 남은 宿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며칠 뒤면 집권당의 대선후보가 결정된다.

후유증이 있겠지만 한동안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던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뒷전에 물러앉게 될 것이다.

아울러 현정권의 위세가 예전 같지 않으리라는 점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서양식 '레임 덕' 현상을 운운하기에는 우리에게 닥친 도전이 버겁기만 하다.

이쯤 해서 남은 반년여 동안 현정권이 할 수 있는 의미있는 일들을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우선 문민정부 출범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보되 그 작업은 30여년에 걸친 권위주의 유산을 5년만에 청산하겠다는 의지가 과욕이었다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김영삼 (金泳三) 정부는 그런 의미에서 과도기 정권이었다.

그렇다면 군사정권 되풀이의 고리를 끊고 문민통치 정착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치발전에 대한 큰 기여라는데 만족해도 무방하다.

문민정권 재창출의 전통을 확립한 金정권이 남은 임기에 할 수 있는 일은 적지 않다.

첫째, 개혁과업의 목표와 성과를 엄정히 평가해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정권치적용 사업이 아니라 자기성찰의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만드는 일이다.

애초 개혁의 정신과 방향에 공감하면서도 오랜 구습 (舊習)에 젖어 불편함과 고통을 이겨내는데 인색했던 국민 모두에 대한 경종 (警鐘) 의 의미를 곁들인 평가라면 더욱 좋다.

차기정권과 정책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요구되는 작업이다.

둘째, 차기정권에 다소 부담될지 모르나 정상적인 정부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들 가운데 정부부처 업무에 대한 평가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국회와 합의 아래 마련하는 것도 뜻있는 일이다.

미국에서 부통령 주도 아래 각부처의 업적평가보고서를 작성하고 정기적으로 의회에 제출함으로써 예산배정과 정책수립에 참고로 활용하는 것과 흡사한 발상이다.

아울러 미 백악관과 국방부 등이 매년 의회에 제출하는 국가전략보고서 같이 행정부가 국회에 제출하는 형식을 빌려 정책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셋째, 이같은 정책평가를 위해 부처별 혹은 분야별로 시한부 위원회를 만들어 운영하되 전직관리들이 적극 참여해 정부의 실책 (失策) 과 개선방향을 현실감 있게 점검하는 작업도 현정권의 몫이다.

과거를 쉽게 잊는 우리 모두의 부족함을 보충하고 역사속에 평가받는 문민정부를 물려주기 위해 자기성찰의 아픔을 겪어야 한다.

정권은 바뀌어도 정책은 남는다.

문민정부의 역사성을 부각하기에 남은 반년은 충분히 길다. <길정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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