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전정환씨 미국 퀄컴이 부른 이유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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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미국 통신기술회사인 퀄컴의 샌디에이고 본사로 옮긴 전정환씨(中)가 최근 현지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동료들과 함께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

전정환(32)씨는 미국 샌디에이고에 있는 퀄컴 본사에서 일한다. 퀄컴은 이동통신기기에 들어가는 CDMA 기술 및 통신용 칩을 만드는 회사다.

전씨는 이 회사 디스플레이 관련 신규 사업부의 상품 매니저다. 컬러 디스플레이 제품을 판매할 수요처를 발굴하고, 고객이 원하는 세부 사양을 넣은 상품을 개발한다.

글로벌 기업의 마케팅 분야는 연구·기술직에 비해 외국인의 진출이 상대적으로 드물다. 업무 특성상 고객과 사내 여러 부서와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데, 언어 장벽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전씨가 재미동포나 유학생 출신도 아니다. 해외 어학연수 한 번 가 본 적 없는 ‘오리지널 토종’이다.

그런 그가 글로벌 기업에 둥지를 틀게 된 데는 곧바로 실무에 투입될 수 있는 수준의 업무 경험 덕이 컸다. 샌디에이고에 있는 그와 e-메일 및 전화 인터뷰를 통해 해외 일자리 구하기 전략을 들어봤다.

◆‘이름’연연 안 해=전씨는 대학 때부터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겠다는 목표가 분명했다. 이를 위해 서울의 4년제 대학에서 정보제어공학에 더해 국제통상을 복수 전공했다. 부모님은 재수를 권했지만, 그는 학벌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1년간 재수할 바에는 그 시간에 다른 공부를 더 해 경쟁력을 키우겠다고 마음먹었다. 1학년부터 영어와 전공 공부에 매달렸다. 3학년을 마치자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거의 채웠다. 방학 때는 임직원 10명 규모의 소규모 컨설팅 업체에서 인턴을 했다. 회사 이름보다는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곳을 골랐다. 일손이 필요한 곳이다 보니 그는 곧바로 일을 배울 수 있었다. 회사의 제안으로 4학년 내내 수업 시간을 제외하고 인턴사원으로 근무했다.

삼성테크윈의 입사 면접 때 가상의 상황을 토대로 마케팅 전략을 세워 보라는 문제가 나왔다. 능숙한 솜씨로 해결책을 도출하자 면접관들은 “신입사원 수준이 아니다. 어디서 일하다 왔느냐”고 물었다. 그는 “학벌로 승부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뒤 다양한 실전 경험을 쌓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회사에 입사해 4년간 신규 사업 기획부서와 디지털카메라 상품기획부서에서 일했다.


◆새로운 도전=어느 날 퀄컴 부사장으로부터 ‘자리가 비었는데 관심있느냐’는 e-메일이 날아왔다. 삼성테크윈에서 근무할 때 업무 관계로 만난 미국 회사의 중역이 퀄컴으로 자리를 옮긴 뒤 그에게 제안을 한 것이다. 그렇다고 자리가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리크루팅 업체를 통해 입사 지원을 했고, 서류전형과 다섯 차례의 면접을 거쳐 합격 통보를 받았다. 회사는 그가 취업비자를 받을 수 있도록 후원했고, 비자 발급 때까지 6개월간은 한국사무소에서 업무를 준비했다.

그는 “현지인이 갖지 못한 강점을 키우면 글로벌 기업에 입사하는 데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퀄컴이 중요한 고객으로 여기는 한국 시장과 고객들의 요구사항을 잘 알고, 그들과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다는 것이 그의 강점이었다. 그는 퀄컴의 디스플레이를 활용해 만들 수 있는 제품 컨셉트를 고객에게 제안해 거래를 성사시키기도 했다. 삼성테크윈 재직 시절 기술업체가 새로운 제품 아이디어를 갖고 제안해 올 때 더 흥미를 갖고 그 기술을 검토했던 경험을 ‘역지사지’로 활용한 것이다.

그의 샌디에이고 생활은 국내에서와는 사뭇 다르다. 억대 연봉을 받게 됐고, 업무 시간 외에는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공부하는 시간은 더 길어졌다. 일상적인 의사소통에는 무리가 없지만, 프레젠테이션 등 대내외 공식 보고를 더 매끄럽게 하기 위해 사내 교육 프로그램을 듣고 전문용어는 단어집을 만들어 외운다. 그는 “도전의 연속이지만 일과 생활에 모두 만족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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