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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빛나는 순간이 오리니 … 힘내라, 엑스트라 인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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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뜨거운 순간’이라는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이상하지 않아? 어렸을 땐 모두들 네 꿈을 좇으라고 하지만 정작 어른이 돼 꿈을 좇으려 하면 못 잡아먹어 안달들이야.” 당신을 못 잡아먹어 안달하는 이 세상을 가로질러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걷겠다는 분들께 권하는 영화 6편.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루는 것이다. 여기 소개하는 영화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말한다.  

김세윤 영화칼럼리스트


매직 아워 ザ マジックアワ 2008
감독 미타니 고키 | 출연 쓰마부키 사토시, 사토 고이치 | 일본 | 12세 | 136분

『허삼관 매혈기』를 쓴 소설가 위화가 인생을 축구에 비유했다. “그저 열심히 뛰는 수밖에 없다. 공 없이 한참을 뛰어야 슛할 기회가 오니 말이다.” ‘매직 아워’의 주인공 무라타(사토 고이치)야말로 공 없이 평생을 뛰어다닌 인생이다. 단 한번도 주인공으로 산 적 없는 만년 엑스트라. 어쩌다 쨍하고 해 뜰 날이 밝아 온다. 보스에게 전설의 킬러 데라 도가시를 데려오겠다고 큰소리친 조직원 빙고(쓰마부키 사토시)가 무라타에게 이게 다 영화 촬영이라고 속이고 킬러 노릇을 시키는 거다. 난생 처음 주인공을 맡았다며 흥분한 무라타가 혼신의 힘을 다해 킬러를 연기하는데, 너무나 사실적인 연기에 속아 넘어간 보스가 그만 실제 살인청부를 맡긴다. 에구머니, 이를 어쩌나? 어처구니 없는 해프닝에 배꼽 잡고 웃다 보면 어느새 기특한 감동의 순간이 덤으로 찾아온다.

“힘내, 언젠가 한번은 우리도 나름 쓸모있는 순간이 찾아오지 않겠니?” 마치 그렇게 말하면서 툭툭, 어깨 두드려주는 친구 같은 영화. 지금 이 순간에도 공도 없이 한참을 뛰고 있을 이 시대 모든 엑스트라 인생에게 권한다.

▶이 장면!

혼신의 힘을 다한 자기 연기를 무라타가 혼자 극장에 앉아 보는 장면. 세상이 날 몰라 줘도 내가 날 알아 주면 그뿐. 그 소박한 성취에 눈물짓는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아 코끝이 찡해진다.


고고70 2008
감독 최호 | 출연 조승우, 신민아, 차승우 | 한국 | 15세 | 118분

이대로 묻어 두기엔 참 아까운 청춘영화. 청춘의 희망을 애써 과장하지 않으면서, 청춘의 좌절을 굳이 미화하지도 않는 태도가 퍽 근사한 영화다. 겨우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가 “놀이터야, 안녕!” 슬프게 작별인사를 고하는 학습지 CF가 엄마들 조바심 부추기는 요즘, “니들 놀고 싶지?” 한마디 내지르고 세상과 ‘맞짱’뜨는 패기는 대단한 희열을 준다. 우리는 과연 1970년대보다 나은 시대를 살고 있는가? ‘고고70’이 던지는 질문은 지금, 꽤 의미심장하다.

▶이 장면!

‘데블스’ 멤버들이 목욕탕에서 마지막 공연을 다짐하며 의기투합하는 장면. 때로 젊음이란 질 줄 아는 싸움도 마다하지 않아 멋지다는 걸 보여 준다.

스텝 업 2-더 스트리트 Step Up 2 The Streets 2008
감독 존 추 | 출연 브리아나 에비건, 로버트 호프먼 | 미국 | 12세 | 97분

우리가 청춘영화에 기대하는 모든 것이 이 영화에 담겨 있다. ‘엘레강스하고 빤따스틱한’ 예술 교육을 일삼는 고상한 학교에 스트리트 댄스의 불손한 기운을 전파하는 여학생이 주인공이다. 전편 ‘스텝 업’(2006)이 음악과 춤에 힘을 분배했다면 이 영화는 오직 춤에 집중한다. 부정맥이 아니고서는 좀처럼 심장박동 빨라질 일도 없는 30대 아저씨가 심장이 터질 듯 맹렬하게 춤추는 청춘을 보고 있자니, 초롱초롱한 그들의 젊음이 부럽고 헤롱헤롱한 내 늙음이 서럽다.

▶이 장면!

‘범생이’를 비웃는 ‘날라리’의 저항. ‘엘리트’를 물먹이는 ‘딴따라’의 반역. 출연진 전원이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 마지막 댄스 배틀!

그레이시 스토리 Gracie 2007
감독 데이비스 구겐하임 | 출연 엘리자베스 슈, 칼리 슈로더 | 미국 | 12세 | 96분

이건 영화이기 이전에 실화며 실화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소중한 꿈이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남자들과 나란히 같은 그라운드를 질주한 미국 뉴저지 최초의 여자 축구선수.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의 여주인공으로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 엘리자베스 슈가 바로 그 불가능한 꿈을 실천에 옮긴 주인공이다. 자기 실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서 그녀는 주인공 엄마를 연기했다. 금남의 영역에 도전하는 여자 이야기, 차별과 편견에 맞서 자기 고집을 꺾지 않는 여자 이야기는 언제 봐도 근사하다.

▶이 장면!

결심이 흔들리는 딸에게 엄마가 말한다. “네 한계를 아는 건 좋지만 남이 정한 한계에 얽매이진 마.” 멋진 엄마의 멋진 격려다.

엘리자베스 타운 Elizabethtown 2005
감독 캐머런 크로 | 출연 올랜도 블룸, 커스틴 던스트 | 미국 | 12세 | 123분

자기 때문에 회사가 쪽박 찬다. 그래서 쫓겨났다. 아버지까지 세상을 뜨셨다. 나도 세상 뜨련다, 목숨 끊을 생각까지 해 봤지만 산다는 건 지독한 중독과도 같아 그렇게 쉽게 끊을 수 있는 게 아니더라. 그때, 한 여자를 알게 되고, 그녀가 준비해 준 지도를 따라, 그녀가 골라 준 음악을 들으며 43시간 자동차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도달한 결론. “담쟁이덩굴은 시멘트를 뚫고 싹을 틔운다.” 시멘트처럼 견고한 좌절의 장벽을 뚫고 마침내 희망의 싹을 틔우겠다고 다짐하는 주인공 따라 덩달아 보는 사람까지 자기 인생의 크고 작은 실패를 긍정하게 만드는 영화.

▶이 장면!

엔드 크레디트와 함께 멋진 에필로그가 나온다. 잘 받아 적어 냉장고에 붙여 둬도 좋을 만큼 멋진!

로키 발보아 Rocky Balboa 2006
감독 실베스터 스탤론 | 출연 실베스터 스탤론 | 미국 | 12세 | 102분

다 끝난 줄 알았던 시리즈, 다 끝장난 줄 알았던 배우. 세상을 향해 항변하듯 실베스터 스탤론은 이런 대사를 집어넣었다. “It’s not over till it’s over.”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는 말씀. 실제 인생에서도 막장까지 내몰려 본 주연 배우가 하는 대사라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얼마나 센 펀치를 날리느냐는 중요한 게 아니야. 수없이 얻어맞고도 쓰러지지 않고 끝까지 나아가는 게 중요하지.” 그래서 로키는 정말 끝까지 나아간다. 당신도 그처럼 세상 앞에 쉽게 무릎 꿇지 말길 바란다.

▶이 장면!

그 옛날 로키가 뛰어오르던 필라델피아 미술관 계단을 직접 뛰어오르며 삶의 용기와 희망을 얻는 실제 시민들 모습. 찡하고 짠하다. 엔드 크레디트와 함께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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