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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미술품 설치의무 유지해야 - 도시미관조성의 보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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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연건평 1만평방 이상의 건물에 적용되는 미술품 설치 의무 제도를 놓고 존폐논란이 일고 있다. 건축주에 대한 규제일 뿐 아니라 담합과 로비등 부조리를 낳고 있다며 폐지론이 제기되자 존치론자들은 삭막한 도시에 최소한의 미적 문화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편집자

대형건물 미술품 의무화폐지 주장은 그 발상부터가 문예진흥법의 기본정신을 망각한데서 비롯된 것이다.공정거래위원회의 공세와 이를 뒷받침하고 나선 관련 부처들의 부정적 시각이 올 여름 문화계의 핫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유감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왜 하필 이때냐,그리고 앞으로 우리의 시각환경문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논점에서 반론을 제기해 보고자 한다.

무엇보다 논의의 시기가 적절치 못하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건축주라는 이해집단의 자율성을 보전키 위해,그것도 어렵게 만든 법제도를 사문화해 버릴 위험마저 부추기면서,문화마인드를 그나마 가까스로 가늠하고 있는 이 시점을 택해서 존폐를 논의하고 있다는 것은 당혹스러운 일이다.세계적인 국제전에서 삼년을 연속 수상하고 대통령이 축전을 보내는등,혁혁한 실적과 발전된 관행마저 무색케 하는데 이르러서는 아연할 수밖에 없다.문민시대에 들어 모처럼 의무규정으로 법제화하고 시행한지 2년도 채 못돼 폐지 운운한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가. 시각환경의 문제를 어떻게 관리할 것이냐 하는 문제도 그렇다.대형건물 미술품 설치 의무를 단지 번거롭고 귀찮게 생각한 나머지 특정 집단의 자율성 침해 정도로 생각했다면 이 또한 어불성설이다.문예진흥법 제11조 규정의 참뜻을 이 정도로 밖에 이해하지 못했다면 이는 진흥법 자체의 취지에 대한 경솔한 도전이라 아니할 수 없다.

문예진흥법의 취지는 열악한 문화인식을 근본적으로 전회시키려는데 있었다.사용공간의 면적을 1백분의1쯤 줄이더라도 미적 문화공간을 이제부터 가꾸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실한 인식에서 출발하지 않았던가.최소한의 할애로 최대한의 문화이득을 얻으려는 취지가 아니었던가.따라서 그간 의무조항 때문에 다소 불편하고 일부에서 악용의 사례가 있었거나 바람직한 시각환경의 조성에 역행한 점이 있었다면 이 기회에 폐지가 아니라 보완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문예진흥법의 해당 조항을 폐지한다고 하면 확산일로를 치닫는 비인간적인 도시의 시각공간을 무엇으로 보완할 것인가.왜 하필 미술만이 그 대안이냐고 하겠지만 초등학교 시절부터 우리가 배워온 것은 생활주변과 시각공간의 미화를 대표하는 활동이'미술'이 아니었던가.여기서 미술은 문화공간이니 공간문화니 하는 보다 더 큰 무엇이다.

미술은 있어도 미술문화나 공간문화는 없다고 자조할 경우를 생각해보라.어떻게 해야 우리의 삶의 질을 양질의 시각문화 속에 담아낼 수 있겠는가.이러한 초보적인 과제는 이미 한 세대 전부터 추진하고 끊임없이 풀고자 했어야 했다.

요컨대'대형건물 미술품'이라는 개념을 인색하게 생각하지 말자.오죽하면 대형건물에다 우선이나마 의무조항을 부과했겠는가.따라서 행정규제 완화라는 미명아래 역으로 미적 문화공간을 소홀케 하고 종국에는 우리의 미의식을 영영 실종케 해서는 안될 것이다.적용면적을 터무니 없이 줄여 법규를 유명무실케 하거나 모처럼 형성된 진흥법의 취지에 대한 공감대를 허무는 일이 있어서도 안될 것이다.

현명하다면 설치공간의 다양화나 설치방법,나아가서는 설치의 목적과 기능의 차별화,조형물 심의의 보편성과 투명성을 위한 보완 프로그램을 마련함으로써 이를 감상하고 향수할 기회를 보다 심화.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김복영 홍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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