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 고달픈데 … ‘지도부 엇박자’ 한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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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2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현재 상태를 2년 더 연장하자는 것이 당과 정부의 논의 결과”라며 “관련법을 (이번 임시국회 때) 꼭 개정했으면 하는 게 우리의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몇 시간 뒤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브리핑에서 “비정규직 기간 연장안은 아이디어 차원에서 정부 측이 제시한 의견이며 당에선 일절 입장을 정한 바 없다”며 박 대표의 발언과 정반대의 설명을 했다. 비슷한 시각 홍준표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4년 연장에 대한 노동계 반발이 심하니 2~3년 정도 경제가 호전될 때까지 한시적 연장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또 다른 목소리를 내놨다.

요즘 한나라당의 사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다. 사안이 생길 때마다 지도부가 제각기 따로 가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개인기만 앞세우다 보니 팀 플레이가 실종됐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최근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문책론에 대해서도 박 대표는 “용산 농성자 사망사건 진상 조사가 먼저”라는 입장이지만, 홍 원내대표는 “법적 책임과 별도로 관리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지난해 정기국회 때도 종부세 개정안, 교육세 폐지안 등을 놓고 원내대표단과 정책위 사이에 불협화음이 빚어졌다.

지도부가 우왕좌왕하니 의원들 사이에서도 무력감이 퍼져 간다. 2월 국회의 대정부 질문을 신청한 지원자는 16명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원내지도부가 당에 배정된 질문 인원(28명)을 다 채우느라 애를 먹었다. 용산 사건, 경제난 심화 등 악재가 즐비한 마당에 대정부 질문에서 정부를 방어해 주다 인기만 떨어지고 야당의 집중포화를 맞는 상황을 여당 의원들이 꺼리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온다.

고질병이 되다시피 한 친이-친박 계파 갈등은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귀국, 경주 재·보선 공천 등을 앞두고 격화될 조짐이지만 지도부는 속수무책이다. 사정이 이러니 당정 간 유기적 협조는 요원한 얘기다. 한 친이계 재선 의원은 5일 “지난해 연말 국회에서 쟁점법안 처리에 실패한 후 청와대가 당에 확실한 가이드라인을 보내지 못하고 있어 지도부에서 여러 소리가 나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청와대는 당과 거리를 두지만 당내엔 확고한 리더십이 없어 거대 집권당이 좌초 중인 것은 과거 열린우리당이 경험했던 실패 사례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근본적으로 청와대와 여당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당정 분리를 선도적으로 시도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임기 말엔 “대통령 따로, 당 따로 책임 없는 정치가 됐다”고 후회했었다.

윤여준 전 의원은 “당정 분리를 통해 당정이 서로 견제한다 치더라도 반드시 협력해야 할 부분도 있다”며 “현 여권은 새로운 시대 당정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모델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세대 김호기(사회학과) 교수는 “현 여권의 문제를 풀려면 무엇보다 대통령과 여당이 함께하겠다는 의지를 갖는 게 중요하며 그 출발점은 바로 대통령의 의지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정하·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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