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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의 영화 VS 영화] 글레이에이터 VS 트로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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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면

영화 트로이의 가장 감명 깊은 부분은 좀 민망하지만 이 아줌마에겐 브래드 피트의 허벅지였다. 주인공 아킬레스 역할을 위해 한 10㎏ 쯤 근육을 늘렸다는데 허벅지는 굵지 않으면서 어쩜 그렇게 미끈하게 뻗어 있는지 마치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의 그것과 꼭 닮은 듯한 그 허벅지는 짧게 올라간 갑옷과 부츠 사이에서 찬란히 빛났다. (적어도 나에겐) 그 갑옷은 역사적 고증의 결과일까, 아님 나 같은 관객을 위한 의상 제작진의 배려인가.

어쨌든 그가 그 길고 곧은 허벅지와 칼을 쥔 긴 팔을 사선으로 쭉 뻗어 결투 자세를 취할 때, 혹은 그것을 허공으로 한바퀴 돌린 뒤 적을 향해 날릴 때 이 아줌마에겐 그것이 전함 수천 척이 동원된 여느 전투신보다 훨씬 이성을 잃게하는 스펙터클이었다. 그의 상반신만 나오는 장면에서도 혹 스크린 밑에 있는 그의 허벅지가 보일세라 무의식적으로 목을 쭉 빼며 몸을 앞으로 기울일 정도였다.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을 독파한 아들은 옆에서 아킬레스의 연인으로 나오는 브리세이즈가 도대체 책의 어디에 나왔는지 갸우뚱거리고, 페트로클루스가 아킬레스의 사촌이 아닌데… 라며 한참 학구적인 관객의 자세를 취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아킬레스의 현신에 육체적으로 감동받은 이 아줌마에겐 그 영화가 호머의 일리아드에 대한 충실한 재현이 되었건 올림푸스의 신들이 왕창 빠져버린 대 역사 서사물로 탈바꿈한 한편의 액션 블록버스터였건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언제 저 허벅지를 한번 다시 볼 수 있을까하는 서스펜스로 그 긴 상영시간이 짧게만 느껴졌다.

영화가 끝난 뒤 나는 이 어쩔 수 없는 아줌마의 주책스러움 때문에 영화 칼럼니스트로서의 본분을 놓친 스스로를 책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스스로에 대한 이 쑥스러움을 달래기 위해 머릿속으로 다시 핑계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아냐, 나의 시선이 아킬레스의 살갗 위에서만 머물렀던건 내 잘못만이 아닐 수도 있어. 그의 위대한 육체를 뚫고 내가 그 캐릭터 속으로 온전히 빨려들어가게 할 만큼 감독이 매력적인 성격화에 실패한 때문이라고 봐. 아킬레스를 명예욕과 시니컬함과 아주 감성적인 면을 동시에 지닌 복합적인 캐릭터로 그리려고 한 의도는 충분히 보이지만 결국엔 모호한 성격으로 머물고 말잖아. 거기에다 전쟁의 과정을 통해 그것의 무상함을 깨달아 가며 변해가는 듯하던 캐릭터가 느닷없이 브리세이즈와의 사랑 때문에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는 결말이라니. 이건 원작과 동떨어진 오락 영화적 결론이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복합 미묘한 그의 캐릭터의 일관성을 깨트리는 황당한 마무리였다고. 이러니 결국 아킬레스가 진정 바라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완벽하게 그와 감정이입을 해가기엔 무리가 있지 않았겠어?

영화를 보고나면 에릭 바나가 맡은 헥토르역이나 피터 오툴이 연기한 프리아모스왕 같은 역할들이 훨씬 더 기억에 남는 것이 주인공 아킬레스의 캐릭터의 미진한 점이 있다는 걸 반증해주는 것 같다. 자유분방한 분위기의 아킬레스와 반대편에선 헥토르는 가족애.애국심 등을 대변하며 일관성 있는 캐릭터로 주인공보다 사랑받는 상대역으로 선악 구분 없이 전쟁의 허망함에 결론을 맞추는 영화의 중심을 잡아주었다. 피터 오툴은 그 한마디 한마디에 장중한 울림을 담은 목소리와 간절한 눈빛으로 프리아모스 왕의 부정을 잊지 못할 명연기로 승화시켰다.

영화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막시무스의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가 왕과의 대립이라는 주 긴장이 해소된 뒤에도 마지막 결투가 끝날 때까지 계속 긴장을 이어갔던 '글래디에이터'에 비해 '트로이'는 헥토르가 죽고 난 뒷부분에서는 트로이의 목마까지 등장하더라도 김이 좀 빠져서, 대중영화로서의 힘으로도 좀 달려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글래디에이터'의 러셀 크로보다는 아킬레스의 브래드 피트를 지지하고 싶다. 물론 러셀 크로의 말없고 상념에 잠긴, 그러나 패배할 줄 모르는 그 캐릭터 역시 멋있지만 그는 그 영화에서 너무 자신의 상황과 고통에 도취한 듯 보인다. 내 생각엔 관객들이 가장 매력을 느끼는 캐릭터는 주인공들이 영화 속에서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의 내면에 있는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변화해 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는 처음부터 자신의 캐릭터와 감정을 지나치게 많이 노출시켜 관객에게 줄곧 강요하는 느낌이다. 다소 모호하긴 했지만 그래도 록스타 같은 섹시한 분위기에 자신의 진정한 욕망에 대해 고뇌하는 고대 영웅이라는 새로운 이미지의 아킬레스에 연민의 한표를 던져야 하는 것 아닐까. 아, 그러나 이 결론은 내 스스로도 절대 믿을 수가 없다. 난 이미 브래드 피트의 허벅지에 이성을 잃었고, 그에 비하면 훨씬 뚱뚱한 거구 러셀 크로가 아무리 멋진 연기를 펼친다 하더라도 손을 절대 들어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윤정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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