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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엿보기>3. 볼일 보며 정사보는 군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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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45면

사람들은 흔히 심각한 차별대우를 받았다고 여기면“누구는 인삼 뿌리 먹고,누구는 무 뿌리 먹었냐?”며 볼멘소리를 하기 일쑤다.또 특수분야에서 은어로 통하는 범털론과 개털론도 따지고 보면 뿌리는 같다.한마디로 사람 위에 사람 없고,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불행히도 인간의 역사를 더듬어보면 범털과 개털이 갈리지 않는 시대는 없었다.인삼 먹는 이와 무 먹는 이는 항상 따로 있게 마련이라는 얘기다.

문화인류학자 태너힐의 끔찍한 증언-“고대 그리스의 귀족들은 과식으로 죽은 돼지와 물에 불린 곡식을 억지로 먹여 살찌게 한 거위를 즐겼다.또 고대 로마의 귀족들은 비둘기의 날개와 다리를 분지른 다음 잘게 부순 빵을 잔뜩 먹였다가 잡아먹었다.”급기야 인육(노예)으로 키운 장어요리까지 식탁에 올렸고. 중국 귀족들의 섭생도 세상에서 둘째 가라면 서럽다.오죽하면“3대 장자는 의복을 알고,5대 장자는 음식을 안다”는 속담이 다 생겼을까.진나라의 으뜸 갑부인 석숭은 촛불로 지은 밥이 아니면 입에 대질 않았다.버금 갑부인 왕제는 수백명의 종을 동원해 사람의 젖으로 키운 새끼돼지찜을 즐겼다.

유한계층의 음식 사치는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보신탕만 하더라도 그렇다.흔히 사철탕.멍멍탕.영양탕으로 불리는 개장국-.그러나 보신탕의 종류는 신분과 품계에 따라 달랐다.민초들은 대망의 삼복이 닥치면 솥을 이고 누렁이 몰고 삼삼오오 계곡을 찾아드는 일을 최고의 사치이자 도락으로 여겼다.

그러나 문무 양반님네는 오동통 살오른 영계를 고아 만든 임자수탕.칠향계탕.삼계탕을 보신탕으로 즐겼고,구중궁궐 임금님은 제호탕(요구르트)과 타락죽(우유죽)을 대놓고 드셨다.그것도 상궁 3인방(수라상궁.기미상궁.전골상궁)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서.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인삼족.범털족의 호사는 과연 섭생에만 국한된 것이었을까.천만의 말씀이다.그들의 호사는 의식주 전반에 걸쳐 있었고 큰일(방분)과 작은일(방뇨)조차도 민초의 상상을 초월한 비범한 방식으로 치러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이 를테면 고대 로마의 귀족들은 용변을 마치고서 손가락을'따닥'튀겼다.그러면 먼발치서 대기하던 노예가 재빨리 달려와 요강을 말끔히 비웠다.레스토랑에서 웨이터를 손가락을 튀기며 부르면 끔찍스럽게 여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유럽 왕실의 화장실 호사도 정평이 나있다.영국의 비교문화연구가 피터 콜릿에 따르면 태양왕 루이14세는 똥누는 일조차 의전이나 왕실 행사로 승화시킨 위대한 인물이다.그는 무시로 요강이 내장된 변기에 앉은 채 정무를 보거나 외교사절들을 접견했다.심지어 변기에 좌정한 왕을 알현하거나 정사를 논한 이들은 한결같이 가문의 영예로 여겼을 정도다.

그런데 루이 14세가 이처럼 독특한 집무 스타일을 애호한 까닭은 무엇일까.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명이 있지만 만성 지병인 소화불량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무지몽매가 판치던 시절,왕은 건강한 치아가 질병을 유발한다는 희대의 돌팔이 주치의-물론 당대에는 최고의 명의였다-의 끈질긴 설득을 가납(嘉納)해 생이빨을 뜬금없이 모조리 뽑아버렸고,그것이 원인이 되어 만성적 소화불량에 시달리게 되었다는 것이다.루이14세는 이로 말미암아 설사약의 골수 팬이 되었다.주야장천(晝夜長川) 변기에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던 그 운명! 그 러나 변기에 앉아 정무를 보는 습관을 루이 14세의 전매특허나 지적 소유권이라 생각하면 곤란하다.거슬러 올라가면 기원전 연나라 한광이나 한나라 무제도 변기를 타고 정무를 보았다.근세의 예로는 나폴리의 페르디난트 4세도 변기 섭정을 즐겼다.피터 콜릿이 전하는 바,그가 식사를 마치고,“과인의 뱃님께서 근심을 풀기를 원하는도다!”라고 하교하면 충신들은 앞을 다투어 똥누는 임금을 보필하고 비위를 맞추어 주었다.

일본 쇼군들의 배변 습관도 유별나기는 매한가지였다.줄리 호란('1.5평의 문명사'저자)이 수집한 자료에 따르면 쇼군이 개구리 도움닫기 자세로 쭈그리고 앉아 과업에 열중해 있는 동안 한 충직한 노예는 끊임없이 부채질을 해 냄새의 방향을 틀어주었고,다른 노예는 쇼군의 뒤를 닦아주는 명예를 차지하기 위해 미소를 머금고 대기하고 있었다.18K 금테 두른 X얘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다음편을-!

손일락 청주대 교수 호텔경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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