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러운 잠자리 ‘입구’부터 살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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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쓰라리고 따가워 도무지 성행위를 할 수 없어요.”
40대 여성 J씨는 수년 전부터 성행위를 할 때마다 무척 아프다고 했다. 너무 아파 못하겠는데 남편은 “원래 여성은 아프고 그게 즐거운 신호니 참으라”며 화만 내서 J씨의 고립감은 극에 달했다.

“아무래도 제 몸속에 큰 문제가 생긴 것 같아서….”
급기야 J씨는 질과 자궁의 문제로 그럴 것이라며 여러 병원을 전전했지만 매번 검사 결과는 정상이었다. 이에 의료진조차 “너무 예민해 그렇다”며 J씨의 심리 상태를 의심했다. 결국 남편과 의료진으로부터 ‘이상한 여자’라는 오명까지 덮어썼던 J씨―.

하지만 J씨는 엄연한 성교통(性交痛) 환자였다. 필자의 검진 결과 그는 ‘전정’이라고 불리는 질 입구에 만성적인 염증이 있는 ‘전정염’이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점은 여성 성교통의 45%, 즉 절반의 원인이 전정염인데 이를 놓치는 경우가 너무나 허다하다는 것이다. 상당수 의료진조차 질 입구의 전정염을 인식하지 못한 채 질 내부와 자궁에 산부인과적 검진만 하다 보니 이런 성교통을 마치 유령의 병처럼 치부한다. 집을 둘러보려면 집 전체를 다 봐야 하는데, 안만 보고 입구인 대문이 쓰러져 가는 꼴을 간과한 격이다.

사실 전정염은 무려 20년 전부터 학계에 보고돼 왔다. 위에서 언급한 오류는 국내 의대에서 성기능 장애를 전문적으로 가르치지 않다 보니 생긴 탓이 크다.

전정염이 있으면 살짝 닿기만 해도 쓰라리고 아파 성행위가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심한 경우 청바지 등 몸에 달라붙는 옷을 입거나 자리에 앉기도 힘들다. 샤워 시 물이 닿기만 해도 아프다는 여성도 있다.

전정염의 주원인은 호르몬의 불균형, 만성적인 캔디다증, 질염, 성병 등이 해당된다. 필자는 미국 연수 시절에 생리 주기나 피임약의 복용 등 호르몬의 불균형에 따라 전정염이 악화되고 통증이 심해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이외에 여성이 너무 자주 씻는 것도 문제가 된다. 특히 질 세척은 위험하다. 여성의 청결제는 질 외부만 사용해야 하는데, 내부까지 질 세척을 하면 정상적으로 몸을 방어하는 균마저 사라져 질내 환경은 엉망이 된다. 그래서 미국 산부인과학회에서는 질내 세척을 하지 말도록 경고하고 있다.

아울러 필자가 늘 강조해 왔듯 성교통에 ‘윤활제’만 쓰고 버티는 것도 잘못된 습관이다. 이는 만성적인 속쓰림에 제산제만 복용하는 꼴과 같다. 위염·식도염·위암 등 실제 근본 문제가 있을 가능성은 내버려 둔 채 제산제로 버티다 보면 화를 키울 수 있는 것이다.

전정염은 앞서 언급한 원인을 잘 교정하고 개선시키면 치료율이 상당히 높다. 그런데 전정염으로 진단한 경우 아예 전정 부위를 통째로 제거하는 식의 시술을 기본으로 하는 경우가 국내엔 허다하다. 이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해당 시술은 어떤 치료에도 반응하지 않는 전정염에서 최후의 수단이며 극히 제한적이어야 한다. 수년 동안 지독한 전정염에 시달린 J씨는 그 근본 원인을 치료한 뒤 지금은 즐거운 성행위를 계속하고 있다.

강동우·백혜경 성의학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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