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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리조나여 ‘철의 장막’을 걷어라…워너 ‘서른여덟 신데렐라’의 귀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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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만년 ‘동네북’을 깨워 일으킨 38세의 사나이가 철의 장막 앞에 서 있다.

애리조나 카디널스의 야전 사령관 커트 워너(사진)다. 워너는 2일 오전(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템파에서 벌어지는 미국프로풋볼(NFL) 결승인 수퍼보울에서 ‘아이언 커튼’ 피츠버그 스틸러스와 맞선다.

1999년 NFL엔 워너 신드롬이 일었다. 주전 쿼터백의 부상으로 대신 경기에 나온,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무명 선수 커트 워너가 약체 세인트루이스 램스를 NFL 역사상 최고의 공격력을 가진 팀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해 한국에서 54개의 홈런을 친 이승엽 신드롬보다 미국에서의 워너 열풍이 더 거셌다. 워너는 2000년 초 세인트루이스 램스를 수퍼보울 우승으로 이끌었는데 미국 언론은 ‘워너의 기록은 야구로 치면 괴물 투수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동네 야구팀을 상대로 낼 기록’이라고 했다. 그에겐 ‘황금팔’ ‘위대한 에어쇼’라는 별명이 붙었다.

워너가 밑바닥에서 올라온 인간 승리의 상징이어서 센세이션은 더했다. 워너의 출발은 초라했다. NFL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하고 수퍼마켓에서 새벽까지 창고 정리 일을 했다. 그러면서도 꿈을 잃지 않았고, 실내 풋볼과 유럽 NFL에서 5년의 세월을 보내다가 NFL에 왔다. 독실한 재림교 신자인 그는 유럽에서 뛸 때 암스테르담의 홍등가를 다니면서 전도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워너 신드롬은 20세기의 일이었다. 성질 급한 NFL 코칭스태프는 밀레니엄 전 일로 기억하고 있다.

2002년 초 열린 수퍼보울에서 워너는 아쉬운 패배를 당했고 그해 말 손가락을 다치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세인트루이스는 이듬해 그를 벤치에 앉혔고 시즌 후 방출했다. 워너가 늙었다는 판단이었다. 뉴욕 자이언츠가 계약했지만 “나이가 들어 패스가 느려지고 머뭇거린다”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2004년 33세의 그를 부르는 곳은 없었다. 동네북 애리조나를 제외하곤. 그것도 교육용·보험용이었다. 유망주 쿼터백 매트 라이어트의 경험을 키워 주는 역할, 혹은 라이어트가 다칠 때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지난 시즌 ‘보험’으로 열심히 뛴 결과 올해 선발 출전 기회를 잡았다. 워너는 패스 성공수(401·2위), 패스 성공률(67.1%·2위), 패스 거리(4583야드·2위), 터치다운 패스(30·3위) 등 MVP급 활약을 펼쳤다. 플레이오프에서도 그는 30점 이상을 득점시키면서 팀을 수퍼보울로 이끌었다. 99년 신데렐라 스토리를 쓴 그는 40을 바라보는 2008 시즌에서 부활의 스토리를 쓰고 있다. 자신의 종교인 재림교처럼 그는 부활했고 61년 동안 우승을 못해 죽어가는 팀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워너는 “신념을 버린 적이 없다. 기회가 온다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워너는 해병대 출신인 부인 사이에 7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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