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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노믹스'가 떠오른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2001년 5월 어느날.컴퓨터 예술가 홍누리씨는 인터넷을 통해 미 홈쇼핑회사 HSN사의 홈페이지에서 고성능 노트북PC를 주문했다.

그러나 이 회사 한국지사는 홍씨가 원하는 제품을 갖고 있지 않았다.HSN사는 이 제품을 생산한 미국 회사에 연락해 본사 주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해 재고가 있는 일본지사가 홍씨에게 배달하도록 했다.이 경우 홍씨가 해야 할 대금결제방식은 기존의 상거래 관행으로는 해결이 어려운 문제를 낳는다.주문은 미국으로 했는데 제품은 일본에서 왔으니 거래관련 세금은 한→일,한→미,미→일중 어떤 경로에 부과돼야 할까.제품가격의 결제과정은 또 어떤가. 가상(假想)공간에서 이뤄지는 전자상거래(EC)시대에 발생할 이같은 문제들에 대해 전세계 정책당국자들은 적잖은 고민에 빠져있다.전자상거래의 기술은 속속 개발되고 이용은 급속히 늘어나는데 비해 이를 뒷받침할 제도들은 곧바로 따라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새로운 상거래의 대부분이 인터넷을 통한 국경없는 거래이다보니 이같은 문제는 더욱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범세계정보고속도로(GII)는 빛의 속도만큼 빠른 광속상거래로 국경을 초월하며 각국의 '경제장벽'을 허물어 나가고 있다.어느나라,어떤 기업이 어디에서 누구와 거래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상거래는 전자공간에서 소리없이 이뤄지기 때문에 전자상거래의 확대와 더불어 전통적인 경제이론이 무색해지고 있다.

빌 클린턴 미 행정부는 이같은 현상에 적응할 수 있는 경제이론을 만들기로 하고,'범세계 전자상거래의 기본원칙'을 내년초까지 마련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사이버 이코노믹스(사이버노믹스)'로 불리는 경제이론 정립은 재무부등 경제부처가 아닌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맡게 됐다.

사이버노믹스는 ▶정보기술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디지털경제▶반도체의 발달로 생산비용이 혁신적으로 절감되는 현상을 관찰하는 칩(반도체)경제▶음성.데이터.영상의 구분이 없어지면서 방송.통신.컴퓨터산업이 통합되는 멀티미디어경제등으로 구성된다.또▶비용없이 무한복제가 가능한 정보의 속성을 연구하는 정보경제▶통신망 규모에 따라 경제가치가 달라지는 네트워크경제도 관심대상이다.사이버노미스트(가상경제학자)들은 ▶반도체기술이 동일한 비용에 18개월마다 두배로 발전한다는 '무어의 법칙'▶통신망의 가치는 망의 크기의 제곱에 비례한다는'메트칼프의 법칙'을 존중한다.

무어의 법칙은 기술로 인해 새로운 생산혁명이 일어남을 보여준다.

한국과학기술원 테크노경영대학원 김재철(金在哲)교수는“인터넷시대에 통신서비스업체의 시장지배력은 얼마나 많은 네트워크(망)와 연결되느냐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네트워크경제분야는 현재 미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에서 이 분야 최고권위자인 니컬러스 이코노미데스 교수를 중심으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사이버노믹스는 또 화폐금융.물가.고용등 거시경제에 대한 연구에도 앞장선다.EC가 도입되면 전화선을 통해 해외자금이 유입되면서 이제까지의 화폐정책은 더 이상 의미를 갖기 어렵게 된다.또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저렴한 물건을 구입할 수 있으므로 정부주도의 물가정책도 힘을 잃게 된다.

한국통신 연구개발본부 김춘식(金春植)박사는 “재택(在宅)근무가 보편화되면 노동자와 기업의 고용관계도 큰 영향을 받게 되고 임금체계도 큰 변화가 있어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컴퓨터 해킹도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는 문제중 하나다.해커가 은행의 EC망을 침투해 거액을 빼돌렸을 때 전화회사가 망을 잘못 구성했는지,은행의 방화벽이 허술한 탓인지,또는 시스템통합(SI)업체나 컴퓨터의 결함인지를 판가름해야 한다.

일본도 사이버노믹스 연구에 깊숙이 들어갔다.일본 우정성 전기통신심의회가 지난 4월 발간한'일본 정보통신의 21세기 비전보고서'는 EC시대에 맞는'사이버법'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특히 경제이론의 재정립을 강조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이 분야의 연구가 진행중이지만 아직 초보단계에 머무르고 있어 보다 강도높은 연구가 요망되고 있다. 이민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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