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속의홍콩>앞으로 7일 둥젠화의 구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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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세븐 투 일레븐(Seven to Eleven)'-. 무슨 광고 카피가 아니다.홍콩특별행정구(SAR) 둥젠화(董建華) 초대 행정장관의 하루 16시간 근무시간이다.그의 육순 나이를 감안하면 살인적인 강행군이다.그것도 벌써 6개월째 계속되고 있다.그만큼'일국양제(一國兩制)'라는 역사상 최초의 실험장을 꾸려가기가 만만치 않다는 얘기다.그 바람에 중국 본토 상하이(上海)에까지'둥파(董髮.둥젠화 헤어스타일)'를 유행시켰던 그의 짧은 머리카락은 더 희어졌다.이젠 눈썹마저 백미(白眉)로 변해버렸다.

그래도 그는 너털웃음만 짓는다.특구일 외엔 관심없다는 표정이다.아니 관심가질 여력이 없다는 체념처럼 보이기도 한다.고심끝에 董이 찾아낸'특구살리기 해법'은'리콴유(李光耀)식'이다.李전싱가포르총리는 董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李전총리는 '정치는 움켜쥐고 경제는 풀어놓는다(政治緊 經濟송)'는 독특한 통치스타일로 싱가포르를 경제 선진국으로 올려놓은 인물.이른바'싱가포르 모델'이라는 말을 유행시킨 주인공이다.董은 바로 이 점에 착안했다.정치야 어차피 중국 중앙정부의 손아귀에 있는 것이니만큼 승부는 경제에서 결판난다고 일찌감치 판단한 것이다.

지난 18일 공포한 회귀법(回歸法)초안은 董의 이같은 생각이 구체화된 대표적인 케이스다.

말썽많은 임시입법회 구성에 법률적 근거를 부여하는등 반환 전후의 정치.법률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마련된 이 회귀법은 바로 지난 65년 싱가포르가 독립때 제정했던 '싱가포르 독립법안'을 그대로 본뜬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쥐고 경제는 푼다'는 대전략은 정해졌지만 이를 실현할 전술이 문제.董이 핵심전술로 파악한 것은 두가지다.

첫째는 홍콩이라는 유리구슬이 깨지지 않으려면 중국 중앙정부와의 관계를 원만히 조절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이다.

중국의 홍콩전략은'주권을 회수,한 나라 두 체제 원칙아래 홍콩인들의 홍콩통치와 고도자치를 실현한다(收回主權 一國兩制 港人治港 高度自治)'는 16자 방침이다.일견 자치를 강조하는 것같지만 사실상 중국정부와의 교류는 필수고 그러려면 중국정부와 각종 연계채널이 필요하다.그렇다고 董과 장쩌민(江澤民)주석.리펑(李鵬)총리사이에 핫라인이 개설돼 있는 것도 아니다.현재 공식화돼 있는 라인은 외교부 홍콩특파원공서와 홍콩주둔해방군으로 홍콩외교를 책임질 외교부공서는 국무원 산하조직이며 홍콩주둔군은 당연히 중앙군사위의 직접 명령을 받는 조직이다.이밖에 홍콩.마카오판공실,홍콩공작위원회,신화사 홍콩분사등 董이 챙겨야 할'상전'이 한둘이 아니다.

董은 이들 상부조직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느냐에 홍콩특별행정구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이들과 삐걱거리면 중국 중앙이 등을 돌릴 것이고,그렇게 되면 특구 살림은 사사건건 제약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번째 문제는 특구내의 살림꾸리기다.

이에 대한 방침은 이미 확정된 상태다.정책결정과 정책집행을 분리키로 했다.즉 행정장관에 정책의견을 제시하는 행정회의.중앙정책조등을 정책결정기구로 묶고 앤슨 찬(陳方安生)을 중심으로 한 기존관리들은 정책을 수행하는 집행기구로 편제한다는 것이다.그렇다고 문제가 그리 간단한 것만은 아니다.앤슨 찬이 이 결정에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달초 그녀는 뉴스위크지와의 회견에서 “행정장관이 광둥(廣東)성장보다 더 중앙정부의 눈치를 본다”고 불만을 토로하면서 “양심에 걸리는 일이 있다면 주저없이 사표를 쓸 것”이라고 위협했다.

사실 그녀는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하고 싶은 눈치다.그녀는 과거에도 크리스 패튼 총독이 정치문제에만 골몰함으로써 생긴 행정공백을 직접 메워왔기 때문이다.그녀와는 결국 타협이 필요하다.18만 홍콩 공무원들이 그녀의 거취를 자신들 운명의 바로미터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특구의 초대 행정장관 노릇을 잘하기 위해 풀어야 할 실타래는 이렇게 한두개가 아닌 셈이다.전세계 국가들이 董의 행보를 걱정어린 시선으로 지켜보는 것도 董이 풀어야 할 숙제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말해주는지도 모른다. 홍콩=유상철 특파원

<사진설명>

홍콩특별행정구 초대 행정부 집행관료들이 지난 2월18일 첫 회의를 갖기

앞서 기념촬영을 위해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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