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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룩>현실화되는 '유럽 합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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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암스테르담의 유럽연합(EU)정상회담은 17일 새 EU조약을 채택함으로써 유럽통합을 위한 결정적 단계를 통과했다.

조약의 핵심은 예정대로 통화통합을 실행키로한 재정안정화협약을 채택한 점에 있다.EU는 실업해소를 위한 고용창출결의안도 동시에 채택해 올해말 정상회담에서 격론이 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단일통화 실시를 위한 결정적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이번 회담은 15개 회원국이 모두 단일통화에 동승할 수는 없겠지만 프랑스.독일을 중심으로 하는 6~7개국이 유러라는 통화를 99년부터 공식도입하는 토대를 구축했으며,2002년에 실생활에 쓰는 단일통화의 출현을 공식예고했다.

99년초부터 국제시장은 달러화와 맞먹는 유러화의 등장을 보게될 것이다.

유럽의 이러한 변화는 80년대말 베를린장벽 붕괴이래 또하나의 대변동을 예고해준다.

유러의 등장은 이미 92년말 네덜란드의 작은 도시 마스트리히트에서 당시 유럽공동체(EC)정상회담이 마련했던 유럽통합조약의 일정표대로 통화통합이 진행된다는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다만 유럽통합의 두 기관차중 하나인 프랑스에 좌파정권이 등장해 유럽의 고질병인 실업문제를 통화통합에 연계함으로써 일정표에 수정이 가해질 뻔했다.그러나 EU정상들이 정치타협을 통해 잘 극복해 통합의 길을 열어주었다.

안정화협약과 고용창출결의안의 공동채택은 유럽정치가 난제를 민주적 정치력으로 해결한 산물이다.이것은 유럽이 대처식 자유경제로부터 프랑스.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가시화한 것으로 매우 주목해야할 대목이다.

이 현상은 영국의 신노동당과 프랑스의 좌.우 동거정부 출범과 무관하지 않다.유럽대륙은 중도좌파정권 시대를 열어 사실상 자유경제시대의 막을 내리고 있으며,미국의 공화당지배의 종식과도 맥을 같이 한다.

특히 내년 독일총선에서 콜 총리의 기민당 재집권을 불안하게 하는 변화이기도 하다.유럽통합에 중산층의 여망이 반영된데서 나타난 것이다.

사회분열과 배금주의(拜金主義)지배를 거부하면서'행복공화국'을 허물 수 없다는 중산층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반자유경제 바람이 앞으로 세계화의 대세로 잡힐는지는 아직 속단할 수 없다.그리고 이러한 바람이 유럽통합을 좌초시킬 가능성도 매우 희박하다.

유럽경제를 부흥시킨 마셜플랜 50주년과 유럽공동시장(EEC)출범 40주년에서 보듯 유럽통합은 반세기에 걸친 완만하고 단계적인 정치.경제.사회발전과 병행해 발전해왔다.

처칠.드골.아데나워등 전후 지도자들의'유럽대륙에서 전쟁을 몰아내자'는 평화의지가 유럽통합작업의 밑거름으로 깔려있다.

그래서 유럽대륙은 2차세계대전후 냉전시대에 유일하게 열전(熱戰)을 면했으며,그때마다 통합작업이 진전될 수 있었다.

통합의 최후단계인 마스트리히트조약도 옛소련의 멸망등 대변동에 직면한 미테랑.대처.콜의 공동작품이었다.통독(統獨)등 대변동이 통합작업과 민주질서를 크게 흔들었기에 이를 저지해 재도약하기 위한 청사진으로 제시된 것이 이 조약이었다.대독일의 패권주의를 차단하기 위한 미테랑과 대처의 공동대응이 유럽통합속의 통독이라는 제도적 장치였다.여기서 마스트리히트조약의 안보적 성격을 엿볼 수 있다.

특히 EU 15개국은 좌.우가 주기적으로 정권교체하는 유연한 민주제도,다수의 행복을 보장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성실성과 근면및 청렴성을 생활화한 기독교정신등의 동질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정신과 제도면의 동질성은 이상(理想)에 불과한 유럽대륙의 통합작업을 최후 단계까지 도달케 했고,이것이 유럽통합을 경제논리로만 해석할 수 없는 이유다.

새 EU조약의 정치연합.사법공조.국경개방은 이미 일부 실시되고 있어 낙관적이다.

그래서 유럽합중국의 종점은 가깝게 다가오고 있다.특히 새 EU조약은 통합과 평화정신을 21세기 새 가치관으로 제시해 국제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주섭일 국제문제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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