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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럼>금융개혁 한국.일본의 차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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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일본열도를 휩쓰는 노무라(野村)증권과 다이치강쿄(第一勸銀)은행의 총회꾼 고이케에 대한 불법이익 공여사건의 모습은 얼마전 한반도를 뒤흔든 한보(韓寶)사태를 그대로 닮았다.그런가하면 두나라는 비슷한 시기에 21세기 금융산업을 겨냥한 금융개혁안을 발표했다.두나라 모두 개혁안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형 금융비리가 터졌고 이로 인한 국민적 분노 때문에 사회 전체적으로 개혁의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된 것은 비슷했다.

그러나 막상 제시된 금융개혁안을 비교해보면 큰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다.우리의 경우 처음엔 일본보다 훨씬 신속하게 진전되는듯 했으나 결국 용두사미식으로 개혁의 본뜻이 사라진 반면 일본은 초기에는 충분한 토의를 하고,국민여론을 조성하고,이해단체간의 입장을 조율하다 보니 느린듯 했으나 나온 작품을 보면 깔끔하게 집행스케줄이 잡혀 있다.한.일 금융개혁안만 비교해보면 강력한 대통령제가 내각제보다 나을 것이 없는 것 같다.문제는 지도층이 갖고 있는 개혁의지의 강도다.물론 우리도 대통령 집권초기라면 사정이 달라질 수 있었을지 모른다고 위안해보지만 금융개혁도 역시 전통깊은 나라가 더 잘하는 것같다. 얼마전 제도피로(制度疲勞)라는 용어를 쓰면서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던 일본 언론이 이번 총회꾼 사건에 붙여 만든 새로운 용어는 구조부식(構造腐蝕)이다.한마디로 일본 경제의 중추 구조가 썩었다는 것이다.당초 노무라증권과 총회꾼간의 불법 거래를 수사하던 도쿄(東京)지검 특수부의 칼날이 일본에서 두번째로 큰 다이치강쿄은행으로 향한 후 일본 국민의 탄식 수준이 달라졌다.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치나 사회에 대한 책임이라는 면에서 대형 은행의 현직 중역이 구속되고 경영진의 거의 전부가 퇴진한다는 사실에 일본 전체가 충격을 받는 듯하다.

낡은 체제가 무너진다는 뜻은 이번 사고가 단순한 증권.금융사고를 뛰어넘어 일본 주식회사 제도의 뿌리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그동안 일본 학자들은 일본 기업의 구조중 주주총회가 별 기능을 못하는 것을 특징으로 지적해 왔다.기업은 종업원의 공동이해 추구를 목표로 한다는 풍조였다.그러다보니 주주의 입김이 효과적으로 배제되어 왔다.이같은 전후(戰後)체제에 대한 한계를 지적하고 나선 사람은'초학습법'이란 책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해진 도쿄대학의 노구치 유키오(野口悠紀雄)교수다.

양국이 겪고 있는 일련의 대형 금융사고는 엄청난 규모의 지진이나 태풍이 올 것을 경고하는 예진이요 징조다.대형지진과 태풍은 바로 더 이상 외국에 벽을 칠 수 없어지고 어느날 문을 열 경우 구미 선진금융기관과의 경쟁에서 져 망하거나 합병당하는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나 일본의 금융개혁과 각종 제도개혁은 기존의 이익집단이 이익을 고수하기 위해 개혁에 저항하고 있기 때문에 구호에 비해서는 별로 빠르게 진행되지 못한다.

바로 여기에 경제적 측면에서 본 개혁의 비극이 자리잡고 있다.규제와 독점으로 혜택을 보는 소수의 목소리에 비해 수는 많지만 일반 국민은 개혁으로 얻는 이득이 피부에 와닿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조용하다.정치인 혹은 크게 보아 정부관료는 자신의 권력 지지기반을 항상 의식하기 때문에 소수라도 잘 조직된 이해집단의 로비에 포획되고 만다.바로 이것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부캐넌 교수가 일찍이 지적한 공공선택 이론의 메시지다.

한보사태와 다이치강쿄사건 같은 엄청난 규모의 금융비리를 겪은 뒤의 의문은 과연 똑같은 사고 재발을 막을 장치를 어떻게 고안하는가일 것이다.일본은 하시모토 정부가 의욕적으로 개혁을 추진한 결과가 차근차근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이에 비하면 우리의 경우는 별로 희망적이지 못하다.이번 개혁안에 사고재발을 근원적으로 막을 은행의 책임경영체제 확립방안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또한 금융기관간의 내부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시장자유화조치는 한은과 재경원의 영역다툼에 밀려 주춤거리고 있다.정부의 시장개입 소지가 있는 한 권력이 개입된 금융비리는 언제고 다시 터질 개연성이 존재한다.다음 정부 초기에는 재경원의 조직개편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장현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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