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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에 바뀐 풍경…지하철 유실물 센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3일 오전 10시. 서울메트로 시청역 내 유실물센터에서 두재영(52) 센터장은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두 센터장:네, 유실물 센터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A씨:물건을 잃어버렸어요.

-두 센터장:어느 방향으로 가는 전철을 타셨나요? 어느 역에서 내리셨죠? 내리신 시간대는요? 어떤 물건을 두고 내리셨죠? 물건을 놓고 내린 곳은 선반인가요 바닥인가요?

A씨:종착점은 잘 모르겠고 신설동역에서 내렸어요. 시간은 어제 저녁 9시 40분쯤. 쇼핑백은 바닥에 내려놓은 것 같아요.

-두 센터장:쇼핑백 재질이 비닐인가요 종이인가요? 겉에는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나요? 무엇이 들어있죠?

A씨:종이백이고 겉에는 신발 그림이 그려져 있어요. 봉투 안에는 검정색과 파란색 셔츠 두 개가 들어있어요.

-두 센터장:성함과 연락처를 알려주세요. 찾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2008분실 품목

두 센터장의 음성은 미아신고센터 구조대가 신고를 받는 것처럼 숨가빴다. 이곳 유실물센터 직원들은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하루 150여 통이 넘는 신고전화를 받느라 귀에서 수화기를 내려놓을 새가 없었다. 특히 요즘과 같은 초유의 경제 불황일 때는 마음이 더 급하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 고객들의 간절함이 두 배로 묻어나기 때문이다.

두 센터장은 지난 겨울이 시작되면서 유실물을 찾아가는 고객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한 푼이라고 아껴야 하는 이유에서다. 서울메트로(1~4호선)와 도시철도공사(5~8호선)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07년 분실물 건수는 5만4731건으로 찾아간 건수는 4만748건, 인계율은 74.4%다. 2008년 분실물 건수는 6만2480건으로 찾아간 건수는 4만7497건, 인계율은 76.1%다. 수치로는 2%포인트 증가했지만 체감지수는 200%다.

고객이 찾아가는 물품 종류는 호황 때와 다소 차이가 있다. 경제가 청신호일 땐 지갑이나 신발, 우산 등은 주인 품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고가에 속하는 휴대폰 신세 역시 마찬가지. 물품 주인과 연락이 돼도 “거기까지 가는 것이 더 힘들어요”“그냥 버리세요”라는 답을 들었단다. 그러나 지금은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휴대폰은 물론이고 도시락통, 장갑 한짝, 모자, 헤진 옷가지까지 알뜰히 찾아간다. 두 센터장은 최근 두 사례를 들려줬다.

사례1. B씨 “밥 보단 도시락통이 더 중요해요.”
도시락통을 분실했어요. 경기가 안좋아 점심값이라도 아끼자는 부인의 제안으로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는데 지하철에 깜박하고 놓고 내렸어요. 점심에 밥을 먹지 못하는 것은 괜찮아요. 제겐 도시락통이 더 중요해요. 그것을 잃어버리면 또 하나 사야하잖아요. 그러면 부인에게 눈치가 보여요. 꼭 찾아주세요.

사례2. C씨 “휴대폰 찾으러 대구에서 올라가요.”
휴대폰을 찾으셨다고요? 여긴 대구인데 찾으러 올라갈게요. 휴대폰은 제 아들 것인데 서울에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잠실역 인근에서 잃어버렸다고 했어요. 요즘 생활도 빡빡한데 휴대폰 또 살 일 있나요. 지금 찾으러 갈게요.

두 센터장은 허리띠를 졸라 매야 하는 요즘 신고 전화 너머에는 고객의 다급함이 전해진다고 했다. 특히 설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 시즌, 큰 맘 먹고 선물로 산 물건들을 잃어버린 경우다. 지난 추석 때도 고향 갈 때 부모님께 드릴 햄ㆍ참치종합세트, 전기장판, 건강식품 등 선물세트들이 유실물센터로 다량 들어왔다고 한다. 두 센터장은 “자신이 탄 전철의 종착역과 내린 곳, 시간대를 알면 누가 훔쳐가지 않는 이상 99% 찾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여기서 한가지 궁금한 점이 떠올랐다. 쏟아져 들어오는 유실물을 보면 두 센터장은 어떤 생각이 들까. 그는 이렇게 답했다. “유실물은 삶의 한 면을 보여줘요. 직장인들이 도시락통을 분실해 찾으러 올 경우 ‘힘든 불황에도 참 열심히 살려고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죠. 백발의 노인이 빼곡히 적은 수첩을 찾기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직접 오는 것을 보면 ‘자신의 일상을 적은 수첩이 저 노인에게는 삶 그 자체구나’라고 느껴요. 잃어버린 물건을 다시 찾았을 때 고객들의 웃음 띤 얼굴을 보면 절로 힘이 납니다.”

서울메트로 시청역 유실물센터에 보관중인 유실물들


글ㆍ사진=이지은 기자

유실물센터의 이모저모

Q:도시락통을 잃어버리면 내용물은 어떻게 처리하나?

A:하루 정도 보관한 뒤 찾아가지 않을 땐 바로 버린다. 상하기 쉽고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Q:현금이나 귀금속은?

A:대부분 찾아가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유실물센터에서 일주일가량 보관한 뒤 경찰서에 보낸다.(시청유실물센터는 관할지역인 남대문경찰서로) 경찰서에서 1년간 보관한 뒤 국가에 귀속된다.

Q:다른 물품의 경우는 어떻게?

A:유실물센터와 경찰서에 1년 6개월가량 보관한 뒤 사회복지시설에 기부한다. (시청유실물센터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Q:과일 바구니나 통조림 선물세트는?

A:과일은 일주일 가량이 지나면 썩기 때문에 폐기처리한다. 통조림 등의 선물세트는 유통기한까지 보관한 뒤 폐기처리한다.

Q:분실물을 쉽게 찾으려면?

A:서울메트로 1ㆍ2호선 시청역 02-6110-1122/3ㆍ4호선 충무로역 02-6110-3344
도시철도공사 5ㆍ8호선 왕십리역 02-6311-6765

서울시 대중교통 통합분실물센터(www.seou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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