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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지도>54. 모노크롬 (1)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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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한국 현대미술의 정착기라고 일컬어지는 70년대.이 시기를 주도한 흐름은 단연 모노크롬이었다.80년대 접어들면서'서구 미니멀리즘의 모방'또는'몰개성'이라는 비판 속에 급속하게 퇴조했던 사조였으나 최근 한국의 정신을 지닌 회화로 재조명되고 있다. 편집자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까지는 한국아방가르드협회와 신체제.에스프리등

여러 미술그룹이 출현하면서 다양한 실험의 열기가 두드러졌다.

72년에는 한국미술협회가 '앙데팡당전'을 만들어 젊은 작가들의 실험 무대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런 경향 속에서 75년 시작된 '에콜 드 서울'은 한국 미술계에 일대 전환을

가져온다.바로 모노크롬을 화단의 전면으로 끌어온 것이다.

'에콜 드 서울'은 전시의 형태를 빌려 현대미술운동,즉 모노크롬을 전개한

조직이다.

현대미술의 선두에 서서 50년대 앵포르멜(마티에르의 강조와 격정적인

표현이 특징인 미술)과 70년대 모노크롬을 이끌었던 서양화가 박서보가

창설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여기에는

정창섭.하종현.윤형근.김창열.권영우.김구림등이 초기 단골멤버로 참여했다.

당시의 일반적인 그룹전과 달리'에콜 드 서울'은 커미셔너 제도를 두어

뚜렷한 주제를 정하고 이에 맞는 작가를 선정했으므로 참가작가들의 성향이

대체로 비슷할 수밖에 없었다.

미니멀리즘의 형식을 바탕에 깔고 여기에 한국의 정신을 끼워 넣은

모노크롬이 이들 작가의 공통된 작업 양식이었다.다시 말해 미니멀리즘을

한국적으로 해석하려는 노력이었던 셈이다.

'에콜 드 서울'이 모노크롬 확산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지만

한국의 모노크롬에 대한 논의는 한국보다 일본에서 먼저 시작됐다.75년 일본

도쿄(東京)화랑에서'한국 5인의 작가-다섯가지 흰색전'이라는 주제로

박서보와 권영우.허황.이동엽.서승원의 그룹전을 마련한 것이다.

이 전시로 모노크롬 회화 가운데서도 특히 백색 모노크롬에 대한 관심이

국내 화단에서 한층 고조됐다.

흰색은 여러색중 하나라는 생각을 넘어 한국인의 세계관을 반영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많은 작가들이 백색 주조의 단색화 작업을 했다.

위의 다섯 작가 외에 김홍석과 곽남신.윤명로.진옥선등이 모두 백색

모노크롬 계열의 작가들이다.

70년대부터 지금까지'묘법(描法)'시리즈를 해오고 있는 박서보는“그린다는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오염된 자기를 정화한다”는 본인의 말처럼'색'이

아닌'행위'가 중요한 의미를 띤다.

방법론적인 입장에서 그리는 행위를 중시하고 색의 성격은 없애버리는

단색조를 택했을뿐 색 자체는 작품에서 별다른 의미가 없다.많은 백색

모노크롬 작가들에게서는 이같은 특성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색면을 추구하는 경향의 모노크롬 작가군도 함께

형성됐다.김기린.정상화.윤형근.하종현.최명영.김진석.최대섭.박장년등이

그들. 색면 위주의 모노크롬 작업을 하는 작가들은 한지.서법등을 차용해

단색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작업을 보여준다.

이들 두계열의 공통점은 그리는 행위만이 남고'그리기'자체는 포기함으로써

붓이 아닌 다른 표현 방법을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권영우는 화선지에 구멍을 내고 정상화는 흠집내기와 메우기를 반복한다.

윤형근은 염색처럼 보이는 기법을 차용하고,또 하종현은 캔버스 뒷면에서

물감을 밀어올리는 식이다.

70년대 말부터 모노크롬은 한지작업이라는 형태로 새로운 모색을 보인다.

박서보등 1세대에 이어 최창홍.한영섭.함섭.문철등은 한지 고유의 성질을 잘

살려 한국적 미감이 어린 독특한 모노크롬 작업을 보여준다.

모노크롬이 점차 화단에서 세력을 얻어가면서 80년대초 수십 수백명의

작가들이 단색조의 비슷한 그림들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몰개성'이라는

비난에 대해 이들 작가는'집단개성'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지만 많은

비평가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한국 미술사의 한 페이지 속으로 묻혀졌다.

이렇게 20여년의 시간이 흐른 90년대 중반 모노크롬이 다시 각광받기

시작했다.서구 미니멀리즘 대표작가의 전시가 잇따르면서 한국 모노크롬도

다시 무대에 등장한 것이다.

지난 95년 관훈갤러리에서 열렸던'에콜 드 서울 20년,모노크롬 20년'과 지난

96년 갤러리현대에서 개최한'1970년대 한국의 모노크롬전'이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전시들이다.

'에콜 드 서울 20년,모노크롬 20년'은 초창기 단골멤버들과 김수자.김종학등

나중에 참여한 작가 48명이 전시에 참여했다.

70년대 한국의 모노크롬을 총정리하는 의미에서 열린'1970년대 한국의

모노크롬전'은

정창섭.윤형근.김창열.박서보.정상화.이우환.하종현.김기린.이승조.서승원.최

명영.이동엽등 한국의 모노크롬을 대표하는 원로및 작가 12인의 작품을

재조명했다.

모노크롬이란, 한국말로 단색화라고 표현하는 모노크롬은 프랑스 작가 이브 클랭이 1946년 오렌지색 단색회화 실험을 거쳐 50년대에 IKB(International Klein Blue)라 불리는 독특한 군청색 단색작품을 그려냄으로써 처음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클랭에게 있어 군청색은 비물질적인 특성과 무한한 의미를 지니는 가장 추상적인 색이다.

이 색을 작가의 흔적과 몸짓을 없애는 롤러로 평면 속에 표현한 것이 클랭의 모노크롬이다.

한가지 색,즉 군청색이 이미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더는 형태나 색이 불필요한 것이다.

클랭 외에 모노크롬의 대표적 작가는 검정색 모노크롬의 애드 라인하르트와 백색 모노크롬의 로버트 라이먼등을 들 수 있다.특히 라이먼의'무엇을 그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그리느냐가 문제'라는 주장은 70년대 중반 한국의 모노크롬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안혜리 기자

<사진설명>

한국 모노크롬 회화의 리더였던

박서보의'묘법'연작중'11-78'.2백27×1백81.5㎝.78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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