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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경쟁력을 말한다 ② “뽑는 경쟁보다 가르치는 경쟁을 … 공교육 정상화, 대학이 풀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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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이기수 고려대 총장은 교수들 사이에 ‘큰형님’으로 통한다. 호통을 치다가도 긴장을 녹이는 넉넉한 미소로 리더십을 보이기 때문이다. 23일 고려대에서 만난 이 총장은 “공교육 정상화 문제는 대학이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이 입시 문제에만 얽매여 뽑는 경쟁만 해 왔기 때문에 사교육이 늘고 공교육이 망가졌다는 논리였다. 2012학년도에 대학별고사 를 실시하겠다는 연세대의 방안에 대해서는 “공부 좀 잘하는 학생들을 뽑겠다는 욕심”이라며 선을 그었다.

만난 사람 = 양영유 교육데스크

  이 총장은 “정부·대학·학부모 등 교육 이해 당사자들이 ‘공교육 정상화 공동협의체’를 만들어 입시혁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르치기 경쟁의 모범을 보이겠다며 소양·언어·체험(인턴십)·봉사교육 네 가지 방안도 제시했다. 대학 경쟁력을 강조할 때는 제스처를 쓰며 정열적인 모습을 보였다.

-2012학년도에 대입이 완전 자율화된다. 대학도 책임이 크다.

“대학이 연구·교육·사회봉사의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한다. 현재의 교육은 입시를 위한 공부이지 진정한 교육이 아니다. 지난해 2월 총장에 취임하자마자 입학처장에게 공교육 정상화 입시방안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절체절명의 과제다. 대학이 입시 경쟁을 하지 말고 잘 가르쳐 인재를 키우는 경쟁을 해야 한다. 입시가 바뀌어야 하는 핵심 이유다.”

-입시를 어떻게 바꿀 계획인가.

“고교에서 정상 교육을 받은 학생을 뽑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게 골자다. 연세대가 대학별고사를 부활한다는 데 그게 공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는 방안인가. 공부 좀 잘하는 애들 뽑겠다는 욕심일 뿐이다. 공교육 정상화는 ‘SKY대’(서울대·고려대·연세대)의 입시와 직결되는 문제다. 세 대학이 입시제도를 안 바꾸면 공교육이 바뀌지 않는다. 대학이 공동 책임감을 갖고 공교육 정상화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총장·한국대학교육협의회·정부·학부모 등 교육 이해 당사자들이 함께 공교육 정상화를 논의하는 공동협의체 구성을 제안할 것이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대학 간 대타협과 대국민 선언→협의체 구성→새 입시안 제시→국민 수용 네 단계를 거친 ‘입시혁명’이 필요하다.”

-구상 중인 방안이 뭔가.

“내신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 위에 교장 추천 등을 많이 배려하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 점수 갖고 순위 경쟁을 하지 말자는 총장 간 대타협이 필요하다. 고려대가 필요로 하는 인재와 서울대가 필요로 하는 인재가 다르지 않은가. 그것을 사회가 용인해 줘야 한다. 총정원의 5배를 뽑은 뒤 제로 베이스에서 교장추천제를 받는다든지 사회봉사활동, 교내외 활동 경력을 인정해 준다든지 해서 뽑는 방법도 있다. 입학처에 점수 1, 2점 차이에 신경 쓰지 말고 독자적으로 뽑는 방안을 고민하라고 주문했다.”

-기여입학제는 어떻게 생각하나.

“학교 발전을 위해 돈이 필요하고, 좋은 뜻으로 기부금을 주신 분들께는 그만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10억원을 줄 테니 자식을 입학시켜 달라면 그건 부정이다. 학교 발전을 위해 애쓰신 분들의 자손이 학교에 들어올 때 배려하는 식의 기여입학제는 필요하다. 총정원의 5배수를 뽑는 방식에서 그런 배려를 검토할 수 있다고 본다.”

-가르치기 경쟁의 구체적인 복안이 있는가.

“있다. 첫째는 소양교육이다. 교양교육원을 3월 개원해 신입생에게 인간학·사회과학 입문 등을 가르칠 예정이다. 둘째는 언어교육이다. 영어는 필수이고 제2, 제3외국어도 해야 한다. 영어·한자인증제는 이미 시행하고 있다. 셋째는 인턴십을 통한 체험교육이다. 기업들이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졸업생을 배출해야 한다. 고려대 국제재단과 미주·아시아·유럽 총교우회를 연결해 필요한 인력을 해외에 인턴으로 보내려고 한다. 넷째는 봉사교육이다. 학생들에게 봉사정신을 길러 주기 위해 사회봉사단을 만들었다. 봉사활동으로 3학점까지 딸 수 있도록 했다.”

-교양교육원이 신입생 교육을 다 맡나.

“그렇다. 독립된 기관으로 교육을 체계화한다. ‘학점 따기’에서 탈피해 세계인으로서 필요한 교육을 할 것이다. 교수 중심의 학과 운영도 미래지향적인 학생 중심 체제로 바꿀 것이다. 학문이 융·통합되는 시대적 요구와 저이산화탄소 녹색성장· 바이오·디자인 같은 미래 신성장 동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학제도 바꿀 것이다. 교수들이 밥그릇만 지키는 시대는 지났다.”

-가르치는 경쟁을 하려면 교수가 바뀌어야 한다.

“지도교수제를 본격 시행하겠다. 교수가 연구해 가르치는 것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교수라는 특권에 상응하는 책무를 부여할 것이다. 일주일에 두 번, 두 시간씩 학생과의 상담시간(Office Hours)을 의무화해 3월에 시작할 것이다. 학생이 졸업 후에도 상담을 요청해 오는 그런 교수가 돼야 한다. 교수는 사랑으로 학생들을 키워 사회에 내보내야 한다. 대학이 천재를 뽑아 둔재를 만든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중간 정도 되는 학생도 인재로 만들어 내보내는 게 대학의 책임이다.”

-교수의 연구 실적도 중요하다.

"교수들은 영어 강의와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 논문을 1년에 최소한 두 편 정도 쓴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신임 교수 영어 테스트를 내가 맡는 이유다. 단과대의 자율권도 확대했다. 다른 과와 경쟁하지 말고 단과대별로 서울대·연세대, 해외 대학과 경쟁하라는 의미다. 자율과 책임을 함께 주는 것이다.”

-대학 경쟁력을 높이려면 정부의 도움이 필요한가.

“정부의 화두가 경쟁과 효율인데 이는 대학 발전에 꼭 필요하다. 대학에 자율권을 최대한 줘야 한다. 사립대에 대한 지원이 너무 부족하다. 대학교육협의회 차원에서 정부 지원을 요구하는 법안을 제출하려 한다. 대학진흥법이나 사학육성법을 만들어 정부 지원을 이끌어 내야 한다. 최소한 이공계와 의과대 기자재 구입은 정부가 보조해 줘야 한다.”

-로스쿨 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여러 번 주장했다.

“대학교육협의회 로스쿨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와 비교하면 변호사 수가 너무 적다. 전국 시·군·구의 85%가 변호사가 한 명도 없거나 한 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변호사 업무는 송사 말고도 다양하다. 그런 걸 하면 된다. 로스쿨 정원이 3000명은 돼야 한다. 그래야 전문 변호인을 양성할 수 있다.”

-경영대 광고와 장학금을 놓고 연세대와 싸움이 치열했다.

“고려대를 좋아하는 것만큼 연세대를 좋아한다(웃음). 연세대가 우리보다 역사가 길고 이공계·의대를 먼저 시작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경영대는 단연 우리가 앞선다. 우리는 경영대 교수가 90명이다. 연세대는 65명이고 서울대는 45명이다. 승부는 판가름 나 있다. 경영대에서 총장이 많이 나왔고 교우 기부도 앞선다. 고려대 출신 교수와 비고려대 출신 교수 비율을 5대 5로 하는 원칙도 발전의 동력이다. 우물 안 개구리에서 탈피해 세계 무대에서 보조를 맞추며 경쟁해야 한다. 국내 대학 중 적어도 10개 이상은 세계 200위 안에 들어야 한다.”

-김연아 선수를 고려대생으로 만든 것은 마케팅 전략인가.

“박태환 선수는 다른 대학으로 갔지만 연아는 우리 품에 안겼다. 연아도 ‘평소 가고 싶어 했던 대학에 입학하게 돼 기쁘다’고 했다. (손을 번쩍 치켜들며) 마케팅 차원이 아니고 학교가 좋으니 좋은 학생이 오는 것이다.”

-취임 첫해 발전기금 1500억원을 모으겠다고 했다.

“재단과 산학협력단 발전기금이 726억원, 연구비가 1370억원이다. 둘을 합하면 2000억원이 넘는다. 발전기금 모금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내가 모은 것은 연말에 거둔 200억원밖에 없다. 학교 발전 방안이 확정되면 콘텐트를 갖고 3월부터 뛸 것이다. 기본 방향은 숨은 기부자 발굴이다. 해외재단의 기부도 받으려고 한다.”

-평소 겸손과 배려의 교육철학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요즘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에 대한 책을 읽고 있다. 취임 연설문의 의미도 되새기고 있다. 나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진주로 유학 가 공부했다. 주위 분들의 도움과 은혜를 많이 입었다. 내가 도움받은 만큼 남에게 베풀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들도 그런 겸손·겸양의 미덕을 갖고 다른 이를 배려하는 삶을 살도록 가르치자는 게 교육철학이다.”

-어윤대 전 총장은 학교 상징인 막걸리를 와인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또 비교한다고 웃으며) 나는 막걸리와 와인 이미지를 다 갖고 있다. 고려대인은 막걸리 정신과 와인 정신이 함께 있어야 한다. 한민족의 기본 얼을 지니고, 세계로 나가야 한다. ‘법고창신(法古創新·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의 정신이다. 막걸리와 와인, 두 가지 맛이 어우러진 와인이 3월에 나온다. 법고창신의 맛을 보여 주겠다.”

-원칙론을 늘 강조하고 있다.

“법학자로서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경제교육이 아니라 법교육이라고 본다. 법을 안 지키면 손해 본다는 걸 확실히 보여 주는 법치주의 정부가 됐으면 좋겠다. 이념을 앞세운 집단이 폭력과 불법행위를 일삼는 일은 없어야 하고, 그것에 대한 대처는 단호해야 한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을 배출한 학교가 됐다.

“각료 중 교우 비율이 김대중 정부 때는 38%, 노무현 정부 때는 30%였는데 이명박 정부에서는 8.7%다. 최근 개각에서 가까스로 20%가 됐다. (껄껄 웃으며) 비율로만 보면 오히려 역차별 아닌가. 대통령을 배출한 대학의 총장으로서 하는 생각은 성공한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게 나라가 잘되는 길이다.”

-정력적이고 활기가 넘친다는 평이 많다.

“시간 나는 대로 운동을 한다. 바쁘면 목욕탕에서도 수영을 할 정도다. 기공훈련을 조금씩 하는데 건강에 좋다.”

-맞수 연세대에 대한 평을 해 달라.

“늘 신사도를 칭찬해 왔다. 100원이 생기면 서울대생은 책을 사고, 고려대생은 막걸리를 마시고, 연세대생은 구두를 닦는다는 말이 있지 않나. 우리는 우직해 보이지만 연세대는 청결하고 깔끔해 보인다. 연세대의 단점은 술값을 내는 속도가 느리다는 것이다. 아니면 우리가 술값을 내는 속도가 너무 빠른가(웃음)?”

정리=정현목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이기수 고려대 총장=1945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부산 동아고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했다. 서울대 법학 석사를 마친 뒤 83년 독일 튀빙겐대에서 상법으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84년 고려대 법학과 교수로 부임한 뒤 92년 학생처장과 94년 기획처장을 거쳐 98년 법과대학장을 역임했다. 지난해 1월 세 번째 도전 끝에 총장에 선출돼 2월 1일 취임했다. 모교에 대한 사랑과 개혁 의지가 남다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가정은 유명한 ‘고려대 가족’이다. 아들·딸·사위·며느리가 모두 안암골 출신이며, 서울대를 나온 부인(조효임 서울교대 교수)까지 교우로 만들기 위해 언론대학원 과정을 밟게 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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