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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 경제팀 3人의 소방수] ② 진동수 “시장과의 소통이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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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2기 경제팀은 ‘선수’들이다. 핵심 3인방인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 진동수 금융위원장, 윤진식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은 실무에 밝다. 현장에서 외환위기를 다뤄봤고 구조조정도 해봤다. 재무부 출신 금융통이다. 섬세한 조율이 필요한 시장을 다루는 데 프로들이란 얘기다.

시장의 평가는 일단 긍정적이다. 일각에선 ‘드림팀’이라며 호들갑을 떨기도 한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더 필요한 게 궁합인데, 궁합도 잘 맞는다. 윤 수석이 지난해 4월 총선에 출마했을 때 윤 후보자는 후원회장을 맡았다. 먼저 재무부 금융정책 과장을 지낸 윤 후보자가 후임을 윤 수석에게 물려줬다. 윤 후보자와 진 위원장은 YS 정부 시절 금융실명제 주무 국장과 과장으로 팀워크를 다지기도 했다.

전 정권에서 고위 관료로 잘나갔지만, 386 세력과는 코드가 맞지 않았다는 공통점도 있다. 윤 후보자는 금감위원장 시절 ‘좌파에 둘러싸인 우파’로 불렸고, 진 위원장은 386 세력과의 갈등으로 옷을 벗어야 했다.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윤 수석은 일찌감치 이명박 대선 캠프에 뛰어들었다.

조직 장악력이 뛰어나다는 점도 닮았다. 그러나 색깔은 좀 다르다. 윤 후보자는 선이 굵고 의리파다. 윤 수석은 꼼꼼하고 맡은 일은 끝까지 해내는 ‘악바리’다. 진 위원장은 섬세하고 디테일에 강하다. 제대로 어우러지면 멋진 하모니가 나옴 직하다.
새 경제팀의 과제는 불끄기다. 지금은 금융위기의 불길이 실물로 번지고, 이게 다시 2차 금융위기로 번지는 비상 상황이다. 왼쪽 오른쪽을 돌아볼 시간이 없다. 빠른 구조조정과 과감한 재정 투입, 새 경제팀의 솜씨에 한국 경제의 앞날이 달렸다.

진동수 “시장과의 소통이 중요”
“시간과의 싸움이 중요하다. 흐름을 놓치면 비용이 엄청나게 들 수 있다.”
진동수 위원장의 취임사 한 구절이다. 그는 구조조정이 뭔지 안다. 외환위기 시절, 그는 은행·증권·보험사가 쓰러지고 팔리는 현장에 있었다. 금융감독위원회 제1심의관이 그의 자리였다. 당시 금감위는 외환위기란 큰 불을 끄는 소방대였다. 어떤 금융회사를 쓰러뜨리고, 어디에 팔고, 어떻게 정리할지를 결정했다. 한국경제 사상 처음으로 은행들이 퇴출됐다. 자고 일어나면 금융회사가 몇 개씩 쓰러질 때였다. 그런 현장에서 그가 곡절 끝에 배운 게 시간이다. 아무리 좋은 구조조정 방안도 시간을 놓치면 그만이란 교훈이다.

그런 그도 “막막하다”고 했다. “어디서부터 손대고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그만큼 이번 경제위기가 간단치 않다는 얘기다. 진 위원장은 우선 현장부터 챙겼다. 환자의 병세가 얼마나 깊은지 직접 진맥해보겠다는 것이다. 임명 첫날 취임식도 미뤄가며 비상경제대책회의에 참석하고, 반월공단을 방문한 것도 그래서다.

그의 행보에 은행들은 벌써 ‘긴장모드’다. 그가 바삐 돌아다니고 챙길수록 금융위가 은행을 압박하는 강도가 한층 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진 위원장은 은행장 출신이기도 하다. 그만큼 은행을 잘 안다. 어떤 곳에서 돈줄이 막히고, 어떻게 하면 풀어낼지 훤하다. 때론 아는 사람이 더한 법이다. 지금처럼 은행들의 ‘배째기’식 버티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그렇다고 ‘무데뽀’로 밀어붙이는 건 그의 스타일이 아니다. 그는 금융에 관한 한 갑과 을을 다 해봤다. 고위 관료시절엔 ‘갑’으로서 은행장 ‘조인트 까기’도 제법 했지만, 6개월여의 수출입은행장 시절엔 ‘을’의 고충도 알게 됐다. 한 은행장은 “마구 몰아치진 않겠지만, 쉽게 넘어가지도 않을 것”이란 말로 진 위원장의 행보를 예상했다.

그의 취임은 기업·금융 구조조정의 속도를 빨리 할 것이다. 청와대가 기대하는 것도 그 점이다. 이른바 이헌재 사단 멤버, 노무현 정권의 고위 관료, 호남 출신 등 현 정권 코드와 맞지 않는 몇몇 핸디캡에도 청와대가 진 위원장을 낙점한 이유이기도 하다. 진 위원장도 그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게다가 전임 전광우 위원장이 시장과 정권 사이에서 눈치보기에 급급하다가 시간을 놓쳐 낙마한 사실도 알고 있다. 그는 머뭇거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늘 “신속하게, 충분히, 필요한 곳을 골라 돈을 푸는 게 구조조정의 핵심”이라고 말해 왔다.

사실 그는 ‘준비된 금융위원장’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금감위와 재정경제부를 오가며 금융 개혁과 기업 구조조정을 맡아 차곡차곡 내공을 쌓아 왔다. 금융위원장 인선 때마다 그의 이름이 가장 먼저 거론되곤 했다. 지난 정권, 386과의 갈등이 아니었다면 금융위원장 자리는 진작 그의 것이었을 터다(진 위원장은 재경부 차관 시절 ‘일방적 대북 지원’에 반대했다. 2007년 북한의 방코델타아시아(BDA) 돈세탁 사건 때 수출입은행을 통해 해결하자는 386 실세들의 요청을 거부, 불편한 관계에 놓였다. 그는 이 일로 현직 차관 신분으로 사정기관의 조사를 받았다. 두 달 만에 옷을 벗고, 1년여를 ‘백수’로 지내야 했다).

친정에 돌아온 기분이겠지만, 그에겐 화려한 컴백을 기뻐할 시간조차 없다. 수출이 가파르게 줄고 경제 체력은 급격히 쇠약해지고 있다. 시장엔 온통 앓는 소리뿐이다. 썩은 것은 도려내고 살 만한 것은 지원해야 하는데, 옥석을 제대로 가리기도 쉽지 않다. 칭찬보다는 욕을 들어 먹기 십상이다.

그가 관료 시절 가장 어려웠던 일 중 하나로 꼽는 게 제일은행 매각이다. 우여곡절 끝에 뉴브리지 캐피털이란 미국 펀드에 팔았지만, 당시 협상을 주도했던 그에겐 ‘단맛 쓴맛’ 다 보여준 딜이었다. 협상이 끝난 후 그는 ‘헐값 매각’ 시비에 많이 시달렸다. 자칫 ‘변양호 신드롬’에 앞서 ‘진동수 신드롬’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 그에게 초대 이헌재 금감위원장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구조조정은 시한폭탄을 지고 지뢰밭을 걷는 것과 같다. 악역을 맡아야 할지도 모른다. 온갖 데서 민원과 투서가 난무할 것이다. 그런 점에 흔들리면 안 된다. 원칙을 지키고 투명하게 하되, 시장만 보고, 시장과 소통해야 한다.”
그는 지금 또다시 이 말을 떠올리고 있을지 모른다.

이정재·나현철 기자 jjy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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