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열며>하나이니 하나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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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옛날 어느 큰 스승께서 매일 아침마다 제자들에게“오늘 고향에서 손님들이 오신다.잘 해드려라”고 말했다.그래서 제자들은 매일 스승의 고향 손님들에게 잘 해주었다.그런데 찾아오는 한분 한분의 고향이 다른 데 왜 스승은 고향이 같다고 하실까를 의심하다가 어느날 여쭤 보니 스승은“우리들의 고향은 원래가 하나다”고 대답했다.

우리의 고향은 어디인가.충청도.전라도.경상도일 수도 있고,외국에 나갔을 때 물어보면 한국이며,넓게는 지구 밖으로 나가면 우리의 고향은 지구다.그렇듯 우리는 모두가 알고 보면 한 가족이고,한 형제며 한 고향인 것이다.

원불교의 2대 정산 종법사께서는“신앙을 하는 데 세가지 구분이 있나니,하근기는 유치하여 무슨 형상 있는 것이라야 믿고,좀 지각이 난 이는 우상은 배척하고 어떠한 명상에 의지하여 믿으며,좀 더 깨치면 명상(名相)도 떠난 진리 당체를 믿나니라.어린아이는 과자나 노리개로 달래고,좀 더 자라면 어른의 이름을 빙자하여 이해시키고,어른이 되면 경위로 일러 주어야 자각하는 것이 각각 지각 나기에 있는 것 같나니라.지금 시대의 일반 정도는 어른의 이름을 빙자해 달래야 하는 정도나 앞으로 차차 모든 사람의 지각이 장년기에 드나니 멀지 아니해 천하의 인심이 하나로 돌아 오리라”하셨다.그리고 게송으로“이 세상 모든 종교가 한 울안 한 이치이므로 하나며,이 세상 모든 생령이 한 집안 한 권속이므로 하나고,이 세상 모든 사업이 한 일터 한 일꾼이므로 하나다”고 하셨다.

앞으로 동네 어린이들처럼 자기 종교의 진리가 최고라고 싸우는 시대는 지나가고 어느 종교를 믿더라도“진리는 하나,세계도 하나,인류는 한 가족”임을 믿어서 진리적으로 종교를 신앙하는 것이 중요한 때다.요즈음 우리 사회도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흩어지고 얽혀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해 가는 데도 계몽적이거나,당위성으로 억지로 하나가 되려고 하기 전에 먼저 우리가 원래 하나임을 믿고 하나이니 하나로 회복하려는 서로에 대한 신앙 운동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역사속에 새로움의 탄생은 항상 먼저 진통을 겪는다.지금 우리나라의 어려움은 새 질서와 새 정의 탄생을 전제한 우리 모두의 아픔이다.그러나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깊은 철학을 가진 우리의 국기인 태극기에 나타난 음양의 이치로 이 어려운 시절을 슬기롭게 받아 들이고 오히려 이 기회를 새로운 정진으로 탄생시킬 때 우리는 크나큰 역량이 결집되어질 것이다.이러한 힘으로 우리 사회에 아직 조금 남아 있는 지연.혈연.학연과 같은 차별을 놓고 우리 민족의 회통사상으로 그 하나의 마음을 회복할 때인 것같다.

신앙은 긴장이 아닌 이완이다.우주만유(宇宙萬有)의 본원(本源)에서 만유가 한 생명체(體性)이므로 하나이니 하나로 이완되고,모든 성자들의 본의(本意-心印)에서 만법(萬法)이 한 근원이므로 하나이니 하나로 이완되고,모든 인류가 본성(本性)에서 형제간에 갈등하다가도 금방 하나로 만나듯 하나이니 하나로 이완되어야 한다.그리고 서로가 다른 점보다는 벽이 없어지는 정보화시대에는 서로가 하나이니 하나로 회복하기 위해 서로 다른 점보다는 서로 같은 점들을 찾는 신앙이 필요하다.

신앙은 나의 생각과 내가 있어 반응이나 흥정하는 것이 아니라,나의 생각이나 내가 없는 감응(感應)으로 하나이니 하나로 나가야 한다.그리하여 우리 민족의 남북(북남)통일도 경제나 정치적으로 풀되 하나이니 하나로 형제간에 다시 만나려는 도덕의 통일이 돼 세계의 역사 속에 우리 통일된 대한민국이 정신의 지도국,도덕의 부모국으로 하나의 꽃을 피우자. 외국에서는 계모임을 하면 뉴스거리가 되는데,우리나라에서는 계 모임을 하는 것은 문제가 안되고 계 모임이 깨졌을 때 비로소 뉴스거리가 될 정도로 우리는 이미 하나에 대한 믿음의 민족이기 때문이다.

황직평 원불교 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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