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분수대>마을의 '수호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고대사회에서부터 시작된 마을신앙은 초인적인 영력(靈力)을 마을사람들의 생활과 생산에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유도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그 의식(儀式)을 위해서는 제당(祭堂)을 마련해야 했는데,그 형태는 자연물로 표시된 경우와 인공물로 표시된 경우,그리고 이 두가지가 복합적으로 표시된 경우 등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자연물로는 주로 나무나 바위가,인공물로는 장승.신도(神圖).당집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전국적으로 가장 널리 분포돼 있는 것이 신목(神木)이다.

마을신앙의 원형이 수목신앙에서 비롯됐으리라는 견해도 그래서 꽤 타당해 보인다.환웅(桓雄)이 3천명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神壇樹) 아래로 내려왔다는 단군설화도 원시적 수목신앙의 뿌리라 볼 수 있다.신라고분에서 출토된 금관의'출(出)'자형 장식이 바로 신수(神樹)의 상징적 표현이라는 점도 학계의 공인을 받은지 오래다.

신목으로 쓰인 나무 가운데 소나무가 가장 많았다는 사실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유럽이'자작나무문화권'을 내세우듯 우리민족은'소나무문화권'에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소나무로부터 물질적.정신적으로 큰 영향을 받아왔기 때문이다.장수(長壽)의 상징으로 불린다든가,줄기와 가지와 잎이 이루는 아름다운 조화와 장엄한 모습이라든가,곧은 절개와 굳은 의지를 상징하는 늘푸른 기상 따위만을 가지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양한 쓰임새는 더 말할 것도 없고,환경오염이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요즘 소나무의 존재는 환경보호의 마지막 파수꾼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듯 싶다.조선조 중기 홍만선(洪萬選)이 지은'산림경제(山林經濟)'는“집 주변에 송죽을 심으면 생기가 돌고 속기(俗氣)를 없앨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과학적 근거를 제시한 것은 아니지만 환경문제와 연관지으면 그럴듯한 측면이 있다.

2백여년간 마을의 수호신으로 전해 내려오다가 고사(枯死)하는 등 대부분 훼손됐던 서울강남구율현동 한 마을의 소나무숲이 주민들의 정성으로 복원(復元)됐다고 한다.임진왜란때 병정역할로 왜적을 무찔렀다는 전설을 간직한 30여그루의 소나무숲이다.그 상징적 의미야 어떻든 현대적 의미로서는'환경의 수호신'역할도 훌륭하게 해 낼 것으로 기대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