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일본이 한국기업 유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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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년전에 우리나라의 어느 도지사가 외국기업 투자유치를 위해 꽤 머리를 썼다.일본 기업인들을 초청해 지방 공업단지 구석구석까지 안내했다.지역 중소기업인뿐만 아니라 주민들과의 만남도 주선했다.그러나 일본의 어느 기업인이 이 지역의 투자 창구를 두드렸다는 소식은 아직 듣지 못했다.

공단 현장을 둘러본 일본 기업인 가운데 한사람이 분석한 바로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그 지역에 투자할만한 매력 포인트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도쿄(東京)에서 비행기를 타고 현장까지 가는데 6시간.그 시간이면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에 도착해 일을 볼 수 있다.한국은 지방으로 갈수록 숙련된 근로자들이 태부족이며 임금수준이 높아 수지 맞추기가 힘들다.하청을 맡길 수 있을만큼 지방 중소기업의 기술과 신용기반은 아직 탄탄치 못하다.거기에다 일본 기업에 대한 배타적 시각이 더 큰 부담을 준다.

일본 기업의 대한(對韓)투자 기피현상이 풀릴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한국에 대한 일본의 투자액은 해외투자 총액의 겨우 1%정도에 머무르고 있다.양국의 무역거래 규모나 인적 교류로 볼 때 비정상적인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일본이 한국 기업까지 적극 유치하기 위해 밥상을 차리고 있다.토지임대와 세금감면,그리고 갖가지 장기저리 자금의 알선 등이 주요 메뉴다.유치경쟁에 나선 일본의 지자체들은 기타큐슈(北九州),돗토리(鳥取),고베(神戶),요코하마(橫濱)등 20여개 현(縣).시(市)에 이른다.특히 외국기업에 대한 장기저리 자금(최고 25년에 연2.7%)대출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90년대초부터 영국.프랑스.독일 등이 외국기업의 투자에 상당한 세제혜택을 주며 유치활동을 벌였듯 이제는 일본의 지자체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 대열에 섰다.어느 곳을 가나 한글로 된 투자안내서를 받아보기가 어렵지 않다.대개의 지자체가'기업유치조정과'를 설치운영할 정도다.

도쿄에는 미국의 거의 모든 주(州)가 일본 기업들의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사무소를 두고 있다.독일의 각 주도 마찬가지며 프랑스도 그 뒤를 잇고 있다.미국.유럽 각국의 여러 주지사들이 도쿄에 몰려 일본 기업을 잡기 위해 벌이는 각축전은 자국의 지역경제를 살리려는 생존경쟁의 한 단면이다.이젠 일본의 지자체장들이 도쿄사무소를 근거지로 외국 기업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묘안을 짜고 있다.일본 기업만을 해외로 빼앗길 수 없으며 좀 더 안정된 지역경제 여건을 미끼로 삼아 상대국 기업들을 받아들이자는 전략이다.한국 기업도 공략의 대상이다.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 총리가 대일(對日)투자회의 의장으로 지역경제활성화 지원에 앞장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을 쫓는 것이다.도쿄와 지방 곳곳에서 투자촉진설명회가 끊임없이 열리고 있다.

일본이 메이지(明治)시대 이래 추구해 왔던 선진국 따라잡기 캠페인은 사실상 끝났다.경제활동의 중심은 도쿄에서 지방으로 옮겨가고 지방분권(分權)의 강화를 통해'국제화'선택이 불가피해졌다.기업이 국가나 지역을 선택한다는 말은 한국 기업에 덜 친화적(親和的)이었던 일본 지자체들에 조차 매우 피부에 와닿게 됐다.

일본 지자체들의 외자유치 활동은 매우 절박하다.땅값이 비싸고 인건비 수준이 높다는 이유로 일본 기업들이 줄줄이 조국을 떠났다.산업공동화(空洞化)로 재정이 악화되고 중앙정부의 지원도 줄어들고 있다.하시모토총리의 개혁의 핵심은 규제완화일 수밖에 없다.일본 지자체들의 관심은 새로운 투자분야.성장분야를 조사하고 마땅한 외국 기업들을 유치,지원하는 일이다.한국과의 항공.해운노선을 끌어들이는데 들인 공이란 대단하다.21세기 아시아경제권을 생각하고 지역생활 기반을 다지는 시스템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우리의 의식이 국내에 머물러 정치인.지자체.경제단체.기업이 따로 놀고 있을 때 일본은 일체가 돼 외자기업 유치에 열심이다. 최철주 일본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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